Editor’s Note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언제부터 여행이 되었을까요. 인간은 텐트와 침낭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산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머물렀던 밤에서, 스스로 선택해 찾아가는 밤까지. 산에서 잠든다는 행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텐트를 세우고, 매트를 펴고, 침낭을 꺼냅니다. 물을 끓여 저녁을 먹고 헤드램프를 손이 닿는 곳에 둡니다. 산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순서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인간은 왜 굳이 집을 떠나 산까지 올라와 잠을 자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산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백패킹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으로 가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인류 최초의 야영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야외에서 보낸 하룻밤은 건물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고학은 사람들이 높은 산에서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냅니다.
에티오피아 베일산맥의 핀차 하베라(Fincha Habera) 암석 은신처는 그중 중요한 사례입니다. 해발 약 3,500m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약 4만7천~3만1천 년 전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생활했던 증거가 발견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현재까지 알려진 선사시대 고지대 주거지의 가장 이른 증거로 보고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빙하가 존재하는 춥고 혹독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등산'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을 찾고, 돌을 구하고, 이동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산에서 자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유럽의 산에서도 비슷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의 슈탈러 자텔(Staller Sattel), 해발 2,125m 지점에서는 기원전 약 7370~6590년 사이 중석기 시대 사람들이 머물렀던 야영지가 발굴됐습니다. 불을 사용한 흔적과 석기 제작, 목재 가공의 흔적까지 남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곳을 고지대를 이동하던 수렵·채집인의 생활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이 지나고 머무르는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1991년 알프스 빙하에서 발견된 외치(Ötzi)는 그 모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약 5,300년 전 한 남자가 해발 3,000m가 넘는 알프스를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풀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고, 활과 화살, 도끼를 비롯한 장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연구로는 그가 티젠요흐(Tisenjoch)를 건너던 중 살해된 것으로 봅니다.
외치를 '최초의 하이커'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가 산에서 잠을 잤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현대적인 등산 장비가 등장하기 수천 년 전부터 높은 산을 이동해야 하는 공간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동이 하루를 넘어가면 밤을 보낼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바위 아래 몸을 눕히고, 동물 가죽을 덮고, 불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Shelter / Sleeping Bag / Sleeping Pad라고 부르는 야영 시스템의 역할은 당시에도 필요했습니다.
비를 피할 곳. 체온을 지킬 것. 차가운 땅과 몸 사이를 막을 것. 장비의 형태는 완전히 달랐지만 문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큰 변화는 근대 알피니즘의 등장과 함께 찾아옵니다. 18~19세기 유럽에서 산은 점차 탐험과 과학 연구, 그리고 등반의 대상이 됩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산에서의 숙박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산 가까이에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제대로 된 산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돌을 쌓거나 자연지형을 이용한 원시적인 대피소에서 요리하고 먹고 잠을 잤습니다. 스위스 정부의 산장 역사 자료 역시 당시 산악 여행에서 숙박시설이 드물어 사람들이 직접 거친 피난처를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1863년 창립된 스위스 알파인 클럽(SAC)은 같은 해 해발 2,448m에 그륀호른휘테(Grünhornhütte)를 세웠습니다. SAC 최초의 산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붕조차 완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산에 온 사람들은 서까래 위에 천을 펼쳐 지붕을 만들고, 떠날 때 다시 걷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작은 돌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의미는 컸습니다. 인간은 산에서 우연히 밤을 맞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을 오르기 위해 잠잘 장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산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가려는 곳마다 건물을 세울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더 자유롭게 산을 이동하려면 잠자리 자체를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오늘날 침낭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휴대용 침구들이 등장합니다. 모직 담요와 가죽, 방수 소재를 조합해 몸을 감싸는 방식이었습니다. 1888년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꽤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진 속 사람은 거대한 주머니 같은 침구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침낭과 비교하면 무겁고 투박하지만 개념은 놀랄 만큼 익숙합니다. 사람이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를 접어 가지고 다닌다. 이 발상의 변화는 중요했습니다. 산에서의 숙박이 특정 장소에 묶이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에서 자는 장비는 빠르게 발전합니다. 다운은 적은 무게로 많은 공기를 가둘 수 있었고, 산악 장비의 중요한 단열재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Eddie Bauer가 1942년 퀼팅 구조의 다운 침낭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고, 해당 특허는 1944년 공개됐습니다.
텐트 역시 변했습니다. 무거운 천막과 목재 폴에서 금속 폴과 합성섬유로, 다시 더 가벼운 원단과 구조로 발전했습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줄이기 위한 매트도 야영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서 산에서 자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형태에 가까워집니다.
쉘터는 비와 바람을 막고, 침낭은 체온을 보존하고, 매트는 차가운 지면으로 빠져나가는 열을 줄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작아지고 가벼워질수록 사람이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범위는 넓어졌습니다.
산장은 더 이상 반드시 도착해야 하는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잠잘 곳을 등에 지고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산에서 자는 이유는 선사시대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찾아 산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산을 넘어야만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시로 내려오면 훨씬 따뜻하고 편안한 침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침낭과 텐트를 배낭에 넣습니다. 몇 시간씩 걸어 올라가 평평한 땅을 찾고, 물을 끓이고, 불편한 매트 위에 몸을 눕힙니다.
장비는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가죽은 다운과 합성 단열재가 되었고, 무거운 천막은 손바닥만 하게 접히는 합성섬유 쉘터가 되었습니다. 배낭도, 스토브도, 매트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오래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만 년 전의 고지대 생활 흔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산에서 보내는 밤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언제부터 산에서 잠을 잤을까'라는 질문에는 정확한 연도를 붙일 수 없습니다. 현재 확인된 고고학적 증거만으로도 인간은 최소 수만 년 전부터 높은 산에서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곳에서 밤을 보냈는지와 오늘 우리가 산에서 자는 이유는 다릅니다.
처음에는 살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산을 넘어가기 위해서였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산에서 밤을 보내는 일 자체를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백패킹의 역사는 새로운 행동을 발명한 역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된 인간의 행동에 새로운 이유가 생긴 역사에 가깝습니다.
해가 지면 텐트 안으로 들어갑니다. 침낭을 펼치고 몸을 넣습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는 계속 달라졌지만, 산에서 맞는 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습니다.
내일도 누군가는 그 밤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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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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