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11월은 '바이크패킹의 달' 이 되는 듯 하다. 작년에도 딱 이맘때쯤이었는데 올해도 어쩌다가 보니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야지~ 가야지~ 라고 하지만, 연말도 슬슬 다가오고 개인적인 일정들로 인해서 날짜 잡기가 쉽지 않은데, 겨우 일정이 맞춰지는 시기가 2년 연속으로 11월이 되어버린 것.
11월 중순 쯤 되면 가을도 끝물이라 단풍의 절정을 느끼기엔 늦은 감이 있기도 하고,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라 챙겨야 할 짐도 많아지기 때문에 바이크패킹을 하기에 완벽한 시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짜피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힘든 법이기 때문에 결론은 갈 수 있을 때 가는걸로!
작년에 2박3일 간 바이크패킹을 다녀와서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다. (울진으로 떠난 2박 3일 바이크패킹)기사 말미에 언급했었는데 계획했었던 석포역~분천역 구간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 때는 예상치도 못했던 산불방지기간과 산림보호구역이 겹치는 바람에 유독시리 계획했던 루트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올해는 작년에 가지 못했던 석포역~분천역 구간을 포함해서 한번 더 낙동정맥 트레일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낙동정맥 트레일과 연계한 임도 코스를 짜기에도 좋고, 끝물이긴 해도 이 맘때 쯤에 가을을 제대로 느끼며 라이딩을 하기엔 그만한 곳이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었다..)
모여서 출발하기로한 석포역 인근까지 차로 운전해서 갈 때 부터 이 곳이 굉장히 외진 지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낙동강 최상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험한 산세와 가파른 절벽 틈 새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꽤 이동해서야 석포역에 도착했다.
예전에 이 인근에서 오티티를 한 적이 있다고. 난 그 때는 오티티(On the trail)란게 있는지도 몰랐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쪽으로는 처음 와 봤는데 깊은 산 속에 둘러 쌓인 곳에 커다란 제련소 공장이 있고, 그 인근에 제련소 직원들의 거주지로 작은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왠지모를 신비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제련소 인근에 흐르는 낙동강은 맑아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제련소로부터 대량의 중금속 오염수가 배출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석포역에서 출발 후 얼마 간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차량 통행도 거의 없는 잘 닦인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기분 좋게 2박 3일의 일정을 시작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서 본격적인 트레일 코스에 진입하자마자 이번 코스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거대한 바위들이 즐비한 구간과 나무 데크로 조성된 길은 가파른 계단이 계속 나타나서 도무지 자전거를 탈래야 탈 수가 없는 길들이 이어졌다. 잠시라도 탈 만한 길이 나오면 자전거를 타다가 다시 내려서 자전거를 들고 이동하는 걸 반복해야 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MTB 인데, 아영장비가 잔뜩 실려있는 육중한 자전거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놨다 하며 바위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단 몇 분 동안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절했지만 계속 나타나는 바윗길과 계단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출발점이었던 석포역을 제외하고는 보급을 할 만한 장소는 단 한군데도 없기에 2박 3일동안 먹고 마셔야 할 것들을 모두 챙겨서 출발해야 했다. 음식으로만 상당한 부피와 무게였다. 온전히 그것들을 배낭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하이킹과는 약간 다르게, 자전거에 짐을 적재하므로 비교적 풍족하게 식음료를 챙겨갈 수 있다는 건 바이크패킹의 매력. (예상치 못하게 자전거를 이고 지고 가야했지만)
첫 날 야영지에서 먹었던 강선희 편집장이 준비한 꽈리고추 삼겹살과 항정살이 별미였다. 사실 뭔들 맛이 없었겠냐마는... 삼겹살과 항정살을 더해 허브솔트로 간을 하고 준비헤온 꽈리고추를 함께 볶은 거였는데, 단순한 조리법이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별미였던 꽈리고추 삼겹살
'다음 번에 컨텐츠로 만들어보자'라고 했을 정도. 나는 편의점에서 냉동 볶음밥을 2개 샀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플라스틱 용기가 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게 별로였다. 출발 전에 포장을 뜯어서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면 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해 잘 들고 평평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좋은 식당이 되었다.
2일차 아침
둘째 날은 야영지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굶주림에 지쳐 생라면을 부셔먹으며 가는데 까지 가 보기로 하지만 결국 계획했던 곳까지는 가지 못하고 오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야영할 만한 곳을 찾아서 텐트를 칠 수 있었다.
11월 중순은 다섯시만 넘어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산 중턱 임도에는 삽시간에 어둠이 깔리고 허공에 오직 세 사람의 헤드램프 불빛 뿐. 빛 공해가 전혀 없는 청정지역이라 그다지 맑은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별이 매우 잘 보였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달그림자가 보이기도 했다. 다시 이 곳에서 야영을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세상과 격리된 듯 한 곳에서 야영을 한 다는건 특별한 경험이다.
코스를 짤 때 경험 또는 위성지도 등을 참고해서 야영할 만한 곳을 생각해 두지만 늘 그랬듯이 계획대로 진행 되지 않는다. 분명 나의 느린 속도와 체력적인 문제도 한 몫 할게다.
둘째 날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 온 볶음밥을 베이스로 이것저것 넣어 조리했는데 이 또한 너무 맛있었다. 다들 편의점 트레일 레시피도 한번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더니 밤이 깊어갈수록 추워졌다.
새벽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11월 즈음 낙동정맥 트레일 부근에서 바이크패킹을 계획한다면 보온의류와 장비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낮 시간 동안에는 꽤 따뜻하지만 일교차가 커서 해가 지면 급속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낮에는 기온이 10도가 넘고 볕 아래는 따뜻하지만 그늘진 곳이나 내리막을 지속적으로 달릴 때는 꽤 추위가 느껴져서 옷을 껴입어야 했다. 따라서 보온자켓은 자주 입었다가 벗어야 하므로 접근성이 좋은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헬멧까지 덮을 수 있는 후디 자켓을 입으면 머리부분의 보온에 도움이 된다.
고도가 높은 지역은 가장 추운 새벽시간에는 온도계로 측정했을 때 기온이 영하 5도 부근까지 떨어지더라. 우모바지를 챙겨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안 챙겼으면 고생할 뻔 했다. 짐이 커지는 것이 부담스럽긴 해도 우모복과 침낭은 역시 충분한 것으로 준비하는게 좋겠다.
산능성이 벌목 작업이 한창인 구간을 지나갔다. 왜 이토록 많은 나무들을 베고 있는 것일까?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기톱 소리는 위협적이다. 작업자들은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터.. 자칫하면 잘린 나무가 쓰러져 우리를 덮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구간이었다. 보기힘든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빠르게 이 구간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자전거를 끌고 간 시간과 탄 시간이 7:3 정도는 되었을까? 체감 상으로는 9:1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러 온 건지, 끌려고 온 건지.. 그 만큼 자전거를 탄 시간보다 끌고 간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급격한 경사는 많지 않았지만 완만한 경사로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에 정신이 혼미했다. 엔진이 부실한 탓에 자전거를 끌고 계속 뒤쳐져서 걸었다.
지치면 계속 갈증이 나는 편인데, 아무리 물을 먹어도 입이 계속 바싹바싹 마르더라. 잠깐 걷고, 물 마시고를 반복했다. 다행히 코스 내내 계곡이 흐르는 곳이 많아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도의 등고선만보면 이제 다 올라온 것 같은데... 저 모퉁이만 돌면 이제 내리막이겠지? 라고 희망을 품지만 또 다시 나타나는 오르막. 계속되는 희망고문이 더 지치게 한다. 약간 쌀쌀한 기온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더운 날씨에 뙤약볕 아래에서 자전거를 끌고 이렇게 걸었더라면...
3일차 아침
아침부터 자전거를 끌고 또 끌어서 백병산 정상(1154m) 인근까지 올랐다. 이제까지 누적고도는 약 2700m. 원점회귀 코스였으니 다시 출발지점 인근까지 가서 늦은 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이었지만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고, 점심은 커녕 저녁이라도 제 시간에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인 시각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더이상의 오르막은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 상쾌해졌다. 올라오는 길은 양달이었지만 내려가는 방향은 이미 응달이다. 헬멧 위로 후드를 뒤집어 쓰고 채비를 단단히 한 뒤 신나게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백병산에서부터 석포면까지의 내리막은 그야말로 이번 코스의 백미였다. 노면이 거칠어서 페달에서 발이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 동안의 피로가 한방에 싹 가시는 느낌!
오프로드를 한참 내려온 뒤 포장된 도로를 다시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마침 저 멀리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2박 3일 100여 킬로미터의 일정이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 되는 듯 했다. 노을을 보며 달렸던 마지막 장면은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헥헥거리며 오르막을 올라가던 중에, "이 짓은 일년에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애" 라고 했었는데, 지난 2박 3일을 곱씹으며 글을 쓰자니 다시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아, 물론 다음 번엔 꼭 힐링 코스로..
이재훈 봉화와 울진 구간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부분은 생각보다 훨씬 오지라는 것이었다. 마을 근처를 제외하고 조금만 임도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면 핸드폰이 거의 터지지 않는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 세명다 gps워치를 준비해갔었고, 나와 선희씨는 사전에 gps루트를 저장해서 갔다. 정말 gps루트를 저장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길을 헤맸을지도 모른다. 작은 기기지만 gps가 되는 장비는 이런 곳에서 확실히 제 역할을 했다.
단순히 달리는 재미만 느끼는 것 이외에 이러한 준비를 하는 것도 충분히 재밌는 요소이다. 루트를 이해하고, 예상해서 장비와 음식을 준비하면 계획한 루트를 더 여유롭게 바이크패킹을 할 수 있다.
출발 전날까지 루트를 보고 장비를 체크 하는것이 얼마나 설레이는 과정인지 느끼길 바래본다.
강선희 국내에는 임도가 많기 때문에 바이크 패킹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악지형은 알다시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외국처럼 끝없는 평원을 달리는 형태의 바이크패킹은 사실상 어렵다.
우리는 3000미터에 육박하는 누적 고도를 자전거를 끌고 올랐지만 해발 1000미터에서 다운힐은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다. 우리와 비슷한 형태의 바이크 패킹을 즐기고 싶다면 비교적 타이어 폭이 넓은 하드테일을 추천한다. 그러면 끌고 오르며 적립한 마일리지를 쓰고도 남을 것이다.
그 짜릿한 쾌감의 여운은 이번 가을에도 진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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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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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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