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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718 ~ 20260718
코스
Asan Beach → Hills & Cliffs → Nimitz Hill → Asan Bay Overlook Memorial
들머리
Asan Beach
거리
1.52km

괌으로 출발하기 전, 취재할 트레일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구글맵은 물론이고 수많은 트레일 정보를 담고 있는 CalTopo를 확인해본 강선희 편집장 마저도 괌의 길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의견을 주었다. 수풀에 가려지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흔적마저 달라지는 길들.

 

그런데 그런 길을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Guam Boonie Stompers.

 

이들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출국을 약 2주 앞두고 참석한 괌정부관광청의 사전 오리엔테이션에서였다. 담당자가 보내준 링크에는 한 달 동안의 하이킹 일정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내가 괌에 머무르던 7월 18일에는 아산 비치(Asan Beach)에서 아산 베이 오버룩(Asan Bay Overlook)으로 향하는 ‘Invasion Hike’가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트레일을 취재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현지 사람들과 함께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부니 스톰퍼스를 알아갈수록 궁금한 것은 점차 길에서 사람으로 옮겨갔다.

 

왜 이들은 매주 걷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걷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날의 목적지는 아산(Asan)이었다. 1944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는 날. 학교에서 수없이 배워온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갑자기 눈앞의 지형과 연결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번 이야기는 아산 인베이전 하이킹(Asan Invasion Hiking)과 그곳에서 만난 괌의 길을 계속 걷게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처음 본 것은 부니 스톰퍼스의 7월 일정표였다. ‘극강의 J’가 만든 듯한 스케줄 덕분에 이들이 한달 동안 어디를 걷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눈에 먼저 들어온 날짜는 7월 18일. 공식 일정에 하루를 덧붙여야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Invasion Hike (Asan to Asan Bay Overlook). 그리고 난이도 (VD).

 

부니스톰퍼스는 코스의 난이도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었다. E=Easy, M=Medium, D=Difficult, VD=Very Difficult, VVD=Very Very Difficult.

 

그렇게 나의 괌 일정에는 하나의 ‘베리 디피컬트’한 계획이 추가됐다.

부니 스톰퍼스는 매주 월요일 무렵, 그 주 토요일에 진행할 하이킹의 상세 안내를 게시한다. 날짜와 시간은 물론 난이도와 거리, 코스에 대한 설명, 준비물, 참가비와 집결지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정비된 탐방로가 많지 않은 괌에서, 참가자가 산행을 준비하고 위험을 가늠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본적인 안내 체계인 것이다.

 

나는 출국 전, 그들의 공식 이메일 주소로 장문의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 하이킹에 참가하고 싶은지부터 시작해서 참가전에 알아두어야 할 괌 트레일의 특징과 준비 사항은 무엇인지까지. 그리고 마지막 줄엔 인터뷰 요청까지. 여러 질문을 차곡차곡 늘어놓은 내용을 보며 만나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약간의 걱정하며 발신 버튼을 눌렀다.

 

이틀 뒤, 동방의 낯선 자가 보낸 수상한 메일에 답장이 도착했다. 첫 문장은 따뜻하고 상냥한 인사로 시작했다.

 

“‘Hafa Adai, Gwangjo.”

 

여러 질문들에 대한 자세한 답변, 그리고 답장의 맨 끝에는 가장 기다리던 말이 담겨 있었다.

 

On the day of the hike, please arrive 30 minutes prior if you would like to meet with our hike leaders. Our leader for that day will be Gina. She will be accompanied by other leaders. “

 

대강 의역하자면, “30분 일찍 와. 우리 리더들이 함께 있을 거야.” 그렇게 부니스톰퍼스와의 약속을 하나 품고 출국길에 올랐다.

 

괌 부니 스톰퍼스(Guam Boonie Stompers)

부니 스톰퍼스와 처음 만나는 날의 아침은 유난히 맑았다. 전날 현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택시를 타고 아산 베이 오버룩으로 향했다.

 

괌은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아 여행자 대부분이 렌터카를 이용한다. 택시는 현지 호출 서비스인 Stroll이나 소개받은 기사에게 직접 연락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 도로에서 택시를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다.

 

약속대로 집결 시간보다 30분 일찍 아산 베이 오버룩(Asan Bay Overlook)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먼저 나온 두 명의 리더가 참가자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툰 영어로 나를 소개했지만, 두 사람은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나를 ‘스페셜 게스트’라고 부르며 5달러의 참가비까지 받지 않았다. 괌에서 부니 스톰퍼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현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먼저 야외활동의 위험을 이해하고 리더의 지침을 따르겠다는 내용의 참가 동의서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다. 참가동의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하이킹과 야외활동에는 부상, 질병, 길을 잃는 상황 등 여러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참가자가 이해하고 동의한다는 내용
  • 참가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와 준비 수준을 스스로 판단해 참여한다는 내용
  •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나 손해에 대한 단체와 리더, 자원봉사자의 면책 조항
  • 리더의 안내와 안전 지침을 따르고, 비상 상황에서는 그룹과 협조를 권장

참가동의서를 작성하고 참가 기념 스티커와 장갑을 지급 받았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MADE IN KOREA ‘반코팅 빨간 목장갑’이었다.

 

집결 시간인 오전 9:00가 가까워지자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상당수는 이미 부니 스톰퍼스의 하이킹에 자주 참여한 사람들 같았다.

 

물론 나처럼 처음 이 곳을 찾은 듯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듯한 낯선 얼굴들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짧은 미소를 나눴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참가자들의 하이킹 채비는 제각각이었다. 큼직한 군용 배낭을 멘 사람도 있었고, 작은 경량 배낭 하나만 짊어진 사람도 있었다. 손에 커다란 물통 하나를 든 것으로 준비를 마친 사람도 보였다.

 

서로 다른 차림에도 묘하게 닮은 점이 있었다. 배낭이든 신발이든 옷이든, 저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닳아온 흔적을 품고 있었다. 새것으로 갖춰 입은 사람들보다는 오래 쓰던 장비를 다시 들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나, 부니 스톰퍼야’ 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빨간색 목장갑을 받아 끼자, 적어도 손만큼은 완벽한 부니 스톰퍼가 된 기분이었다. 아주 소박한 형태의 인피니티 건틀렛이었다. 강해진 느낌.

 

참가자들이 거의 다 모이자 부니 스톰퍼스의 리더들도 함께 걸을 채비를 마쳤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 가볍게 대화를 나눴고, 집결지에는 자연스럽게 웃음소리가 번졌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 서로를 반기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날 하이킹의 메인 리더인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뒤, 나를 한국의 아웃도어 미디어 ‘베러위켄드’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덕분에 나 역시 참가자 모두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리더들이 운전하는 차량에 나누어 타고 하이킹 출발지로 이동했다. 출발지는 아산 베이 오버룩(Asan Bay Overlook)에서 약 6km 떨어진 아산 비치(Asan Beach) 인근의 마을. 이날의 하이킹은 단순히 해안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코스가 아니었다. 1944년 7월 21일, 미 해병대 제3사단이 아산 해변에 상륙한 뒤 일본군이 방어하던 능선과 고지를 향해 전진했던 전장의 방향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지금 나는 숲과 마을이 들어선 그 길의 시작점에 서 있고, 그 끝에는 당시의 상륙 해변과 희생을 기억하는 아산 베이 오버룩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로 괌에서는 현지 법이 정한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픽업트럭의 짐칸에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이 허용된다.

 

오전 9:34, 리더들의 차량이 한두 차례 출발지와 집결지를 오간 뒤에야 거의 모든 참가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배낭과 신발끈을 다시 점검하고, 챙겨온 간식과 물을 확인했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이어갔고, 출발지에는 여전히 유쾌한 분위기가 흘렀다.

미 육군에서 동물의 진료와 관리를 지원하는 수의테크니션으로 복무중인 Robyn. 그리고 선교사인 Sister Allred는 그날 나를 가장 많이 챙겨준 사람들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혼자 멍하니 서 있을 때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혼자 있으면 일단 챙긴다.' 그날 내가 배운 미국식 노파심이었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참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주최 측의 권장 사항은 있었지만, 장갑을 제외하면 복장과 장비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다. 제각기 다른 차림만큼이나 이들이 이 길을 즐기는 방식도 서로 달라 보였다.

이곳에서 부니 스톰퍼스의 리더들은 참가자들을 통솔하는 딱딱한 주최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꼭 하이킹에만 머물지 않았다. 나의 언어적 한계로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걷는 일을 매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각자의 일상과 근황, 서로의 관심사로 자연스럽게 넓어져 가는 것 같았다. 대화 속에 ‘he’와 ‘she’가 자주 들렸던 것을 보면, 아마도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데이빗이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날 함께 걸을 Asan Invasion Hike의 의미와 코스의 개요, 주의해야 할 점을 약 5분간 간단히 설명하는 브리핑이 이어졌다.

이날은 작은 축하의 시간도 있었다. 정기 하이킹을 10회 완주한 참가자에게 부니 스톰퍼스 티셔츠가 전달됐다. 티셔츠를 받은 주인공은 환하게 웃었고, 모두가 박수로 그를 축하했다.

 

사진의 가장 오른쪽에서 파란 옷을 입고 있는 이는 부니 스톰퍼스의 오랜 일원인 Martin이다. 나는 걷는 내내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한국어로 대화가 통하는 그를 찾아가 이것저것 물었다. 돌이켜보면 Martin에게 꽤 많은 질문을 쏟아낸 셈이다.

출발을 앞두고 괌기와 성조기 앞에 모인 40여명의 참가자들. 다양한 국적과 차림의 사람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부니 스톰퍼였다.

 

아산 인베이전 하이킹 (Asan Invasion Hiking)

드디어 첫걸음이 시작됐다. 나는 기념사진을 찍은 뒤 어딘가에 따로 있는 트레일헤드로 이동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선두의 리더는 갑자기 바로 뒤편,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입구를 알리는 표식도 또렷한 길도 없었다. 조금 전 단체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자리가 트레일헤드였던 것이다.

 

아나오 클리프 편에서도 언급했듯, 괌에도 분명 트레일헤드와 길(path)은 존재한다. 다만 내가 경험한 괌의 길은 선명한 선이라기보다 ‘대략 여기에서 저기까지’ 이어지는 방향에 가까웠다. 눌린 풀과 사람의 흔적, 수풀 사이에 남은 작은 표식을 찾아가는 것까지가 트레일의 일부였다. 처음 찾은 나 혼자였다면, 수풀 속으로 첫발을 들이는 일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길의 초입을 조금만 지나면 적당한 터널이 이어지고,

수풀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면서 시야가 트이고, 머리 위로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괌에 머무는 동안 느낀 하늘은 대체로 명확했다. 괌의 하늘은 좋거나, 나쁘거나.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어중간하게 흐리고 뿌연 날은 드물었다.

 

추위보다는 차라리 더위를 견디는 편이 나은 나에게는, 이런 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괌의 풍경을 설명하다 보면 기사의 취지와는 다르게 자꾸 감상적으로 변한다. 아직 트레일헤드를 막 벗어난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이었지만, 뒤로 펼쳐진 아산 비치의 풍경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풍경이 특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일정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 내려다보이는 저 시작점에 내가 다시 서게 될 날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몇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낮은 구릉과 골짜기를 넘나갔다.

 

비탈을 내려오자 잠시 숨을 고를 만한 평지가 나타났고, 그곳에는 리더 Gina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며 응원을 보냈다. 앞에서 길을 이끄는 것뿐 아니라, 뒤따르는 사람들의 걸음을 살피는 것도 리더의 역할처럼 보였다.

한동안 평지를 걸으며 찾았던 안정도 잠시였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작은 물줄기 하나를 만났다. 깊지도, 폭이 넓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어중간한 물줄기야말로 괜히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나 역시 잠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발을 적시지 않고 건널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우회를 시도한 앞사람들이 오히려 더 깊어 보이는 곳에 발을 빠뜨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괜한 꾀를 부리지 않기로 했다.

 

포기하면 쉬워진다.

포기의 결과는 역시 아름다웠다. 비 오는 날 황톳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딱 그 질감을 떠올리면 된다. 물을 머금어 말랑하게 풀어진 흙이 신발 밑창에 달라붙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이 조금씩 땅속으로 밀려 잠기는 그런 감촉이었다.

물빛만 보면 수질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이곳의 지반과 토사 때문인지 사람들이 연이어 물속을 지나고 나자 바닥의 흙이 뒤집히며 금세 짙은 흙탕물처럼 변했다.

 

그때는 그저 발을 어디에 디딜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이번 괌에서 트레일 위로 흐르는 담수를 만난 것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곳에도 판다누스가 자라고 있었다. 처음 그 잎에 손이 닿았을 때는 톱날을 스치는 듯한 거칠고 날카로운 촉감에 깜짝 놀랐다.

 

출발할 때 받아 든 빨간색의 ‘무지개 반코팅 장갑 10G’의 쓰임도 점점 분명해졌다. 가파른 곳에서 땅을 짚고 거의 사족보행을 할 때뿐 아니라, 길을 막아선 이런 거친 식생을 한쪽으로 밀어내는 데도 꽤 유용했다. 평범한 목장갑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수풀을 지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은 꽤나 실사구시의 고급 장비였던 것이다.

 

모두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렸다. Asan Invasion 코스는 편도 약 1마일에 불과하지만, 거리만으로 난이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가파른 경사와 거친 식생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고, 구간에 따라서는 한 번에 반걸음씩 전진하는 것이 고작일 때도 있었다.

서로 준비해 온 간식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달콤하고 수분이 많은 체리 한 알은 더위 속에서 걸으며 떨어진 기운을 제법 빠르게 끌어올려 주었다. 받아먹고 나니 조금 아쉬워졌다. 나도 한국에서 하이킹할 때 즐겨 먹는 간식을 몇 가지 챙겨와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제로 이날 기록한 GPX를 확인해보니 평균 이동 속도는 약 0.9km/h에 그쳤다. 짧은 거리와 달리 체력 소모는 컸고, 뜨거운 날씨까지 더해지면서 물을 자주 찾게 됐다. 처음 참가 동의서에 적혀 있던 난이도 ‘D(Difficult)’와 1마일이라는 거리가 좀처럼 매칭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 D가 제법 현실적인 알파벳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걸음 내내 선두에서 리딩을 맡아준 데이빗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쉬어갔다. 나는 앞서가는 참가자들의 행렬을 보고 싶어 중간과 후미를 오가며 걸었는데, 어느 위치에서도 선두가 얼마나 앞서 있는지 비교적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부니 스톰퍼스 리더들이 입은 붉은색 옷은 멀리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수풀 사이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붉은색은, 긴 행렬의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안전등처럼 느껴졌다.

하이킹 내내 에너지가 넘쳤던 Robyn과 Jodey. Jodey는 미 공군 소속으로,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지만 당시 몇 달간의 임시 임무로 괌에 머물고 있었다. 고향은 괌의 이웃 섬 사이판이다.

낑낑거리며 아산 베이 오버룩에 도착한 내게, 한 미 육군 소속의 참가자(검정색 후디)가 큰 미소도 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It’s Fun?”

 

그는 하이킹 내내 그 짧은 한마디처럼 과묵한 사람이었다. 일행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걸을 때는 늘 주변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일행을 챙겼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듯한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괌에서 웨딩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Miyuki(가운데)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다른 참가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Michael(왼쪽)은 한국 대전과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괌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이킹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Miyuki에 따르면 Allen(오른쪽)과 Michael은 모두 뛰어난 하이커이자 러너로, 서로에게 동기를 주며 선의의 경쟁을 즐기는 사이라고 했다. 뛰어난 두 ‘얼굴’들의 브로맨스라니.

 

이름은 미처 묻지 못했지만, 이번 하이킹의 ‘잘생김’을 담당했던 참가자. 휴식 시간 내내 Sister Allred와 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Sister Allred와 온화하게 웃으며 그 이야기를 받아주던 그의 케미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장비였다. 나 역시 오스프리 카타리 3(Osprey Katari 3)를 사용해 보았지만, 분명 내가 메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가방을 두고도 그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장비를 해석하고 있었다.

픽업트럭을 탈 때부터 앞자리에 앉아 있던 참가자였다. 코스에서는 서로의 위치가 계속 달라 좀처럼 마주치지 못했지만, 모두가 쉬어가는 시간에 다시 만났다.

 

나도 그 나이가 되어서까지 계속 걷는 걸 즐길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하이커의 모습과 꽤 닮아 있었다.

호기심은 많았지만 결코 무례하지 않았던 우리의 참가자, 아니 참가견. 이 녀석도 조금은 피곤했던 모양인지 출발할 때보다 얼굴빛이 부쩍 노래져 있었다. 물론 농담이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Fresh Foam X Hierro v9를 신은 참가자도 발견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신발과 배낭, 오래 사용한 장비들을 구경하는 것도 내게는 꽤 큰 재미였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신고 무엇을 메고 있는지에는 나만큼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틀 전 이 지역에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폭우가 내렸지만, 의외로 걷는 동안 그 흔적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결국, 그날의 비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듯한 구간을 마주하고 말았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미끄러지는 비탈에서는 오히려 깊게 뿌리내린 잡목들이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이 구간에서는 작은 병목도 생겼지만 발걸음이 크게 꼬이지는 않았다. 중간의 리더는 긴 문장의 쉼표처럼 행렬 사이에 자리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빨간 티셔츠가 시야 어딘가에 있었다.

이름은 묻지 못했지만, 가방의 ‘RUN GUAM’ 패치를 보고 러닝을 하시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러닝과 하이킹을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

 

뒤늦게 보니 가방에 붙어 있던 Southern Mountain Gear는 괌의 아웃도어숍이었다. 귀국일인 일요일에는 문을 닫아 결국 들르지 못했다. 뭐, 이 정도면 괌에 한 번 더 올 이유가 생긴 셈이다.

 

여하튼 이 사람은 하이킹 내내 유난히 에너지가 넘쳤고, 무엇보다 참 행복해 보였다.

걸어갈 길보다 걸어온 길이 더 많아졌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하이킹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든 듯했다.

 

1944년 당시 정확히 이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문득 이런 험한 지형을 상륙한 병사들은 어떻게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영화의 배경은 괌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비치 상륙 장면과 <덩케르크>의 해변이 떠올랐다.

‘여러분, 지쳤나요? 저는 지쳤답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참가자들을 따라갔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1.6km를 우습게 보았던가. 땡볕 아래를 걷다 보니 몸속의 피마저 평소보다 2도쯤 뜨거워진 기분이었다.

신발은 너덜너덜해진 지 이미 오래였다. 지난 경험들로 미루어 이번 괌에서는 고어텍스가 연속되는 하이킹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구멍 송송 뚫린 이에로의 메쉬 덕분에 발은 젖어도 계속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론 이 신발은 이후 아나오 클리프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1편 참고)

 

언제나처럼 사족보행, 혹은 사륜구동의 시간이다. 리더라고 별수 없다! 꽤 많은 구간에서 나는 카메라를 들 수조차 없었다.

나도 나름 다년간의 경험으로 산에게 수도 없이 기만당해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이 갑자기 가까워지고 산의 짓궂은 장난이 심해지면, 보통 끝이 가까웠다.

장난은 장난으로 받아쳐주는 게 원칙이다. 즐겁게 올라가려 했으나 로프의 탄성이 생각보다 강했다. 내 몸무게로 바닥까지 로프를 팽팽하게 당겼다가 놓으면, 인간 새총이 되어 한 방에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디즈니 만화동산같은 상상력)

참가자 모두 한땀한땀 신중하게 로프구간을 오른다. 역시나 리더는 여기서 뒤로 굴러 떨어진다면 아마 저 포인트 정도에 떨어질거야 라고 생각드는 지점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다.

 

아산 베이 오버룩이 거의 보일 듯한 지점에서 한 번 더 쉬어갔다. 하이킹이 끝난 뒤에는 한 한인 참가자에게 Asan Invasion과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들이 괌의 전쟁사를 꽤 가까운 기억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하이킹 중간중간에도 아산 인베이전과 이곳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여러 번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마다 펼쳐 들던 괌 국기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전통 항해선인 ‘프로아’와 코코넛 나무, 바다가 담겨 있고, 붉은 테두리에는 전쟁을 겪은 섬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깃발을 들었는지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날의 길 위에서는 그 깃발이 단순한 기념사진의 소품처럼만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던 Rihanna는 자신이 애정하는 Canon G7X 이야기를 꺼내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함께한 남편 Trace와는 일을 위해 괌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Facebook을 통해 부니 스톰퍼스를 알게 됐다고 했다. 아직 합류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하이킹을 통해 괌의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섬의 역사까지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쉬며 풍경을 바라본 뒤, 바로 뒤편의 아산 베이 오버룩으로 향했다.

아산 베이 오버룩은 정말 바로 뒤편에 있었다. 불과 1.6km 남짓한 길인데도 정상 부근의 풍경에서는 출발할 때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초록은 줄어들고, 짙은 갈색의 진흙은 말랐다가 다시 축축해지기를 반복했다. 바위와 자갈도 점점 길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오전 11:01. 드디어 아산 베이 오버룩에 도착했다. 1시간 30여분의 짧지만 강렬한 하이킹이 끝났다. 멀리 아산 해변을 내려다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이 희미하게 이어져 보였다. 그 위로 마치 오래전 상륙한 병사들이 이곳을 향해 올라오는 모습이 잔상처럼 겹쳐지는 듯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전망대의 구조물에 걸터앉아, 나처럼 방금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정오에 가까워진 햇볕은 따가웠지만,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옷과 피부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원함은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종료의 세레머니처럼 바다 너머의 구름도 빠르게 걷혔다. 그리고 그 뒤에서 훨씬 진한 푸른빛의 하늘과 바다가 열리기 시작했다.

부니 스톰퍼스의 리더들이 미리 준비해둔 시원한 티를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이온음료처럼 당분이 강제로 몸속에 주입되는 듯한 느낌도, 탄산이 주는 자극적인 펀치감도 없었다. 대신 달지 않고 슴슴한 맛이 달아오른 몸을 차분하게 식혀주는 듯했다.

 

첫 한 컵은 거의 입에 털어 넣듯 마셨고, 두 번째 잔부터는 천천히 몸을 식히듯 넘겼다. 그러고 나니 조금 전까지 2도쯤 끓어올랐던 피가 다시 정상 온도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오른쪽부터 Grachelle, David T(Titzel), David P(Polzin), Gina, Denise, 필자인 나, 그리고 한국어로 이런 저런 많은 도움을 주었던 Martin이다. 부니 스톰퍼스는 매회 각자의 일정에 따라 함께하는 리더의 조합이 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날 이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것도 꽤 특별한 일이었다.

 

모든 일정이 종료되고 잠시 전망대 한쪽의 있는 Memorial Wall of Names을 둘러 보았다. 검은 벽에는 수많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괌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아산 해변에서 이곳까지 직접 걸어 올라온 뒤라서였을까. 그 이름들이 단순한 숫자나 기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이킹은 끝났지만 리더들의 일정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다시 차량 한 대에 함께 올라, 각자의 차가 기다리고 있는 아산 비치 인근의 출발지로 돌아간다.

 

이 순간만큼은 묘하게 공감이 됐다. 베러위켄드 역시 오티티나 라이터 같은 행사를 마치고 참가자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긴장이 풀리고, 아쉬움과 안도감 같은 여러 감정이 뒤늦게 밀려오는 시간. 멀리 괌까지 와서 그 익숙한 순간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이날의 나는 운영자가 아니라 참가자였지만.

출발지로 돌아와 나는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선물도 받았다. 열 번의 하이킹을 완주해야 받을 수 있는 부니 스톰퍼 티셔츠였다. 나는 이제 겨우 한 번을 걸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선불로 받은 모양이다. 그러니 나는 살면서 아홉 번은 더 부니 스톰퍼스와 걸어야 한다. 티셔츠 한 장을 받아 들었을 뿐인데, 묘하게 정말 ‘부니 패밀리’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참고) 아래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부니 스톰퍼스에는 반드시 열 번의 하이킹을 완주해야 티셔츠를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도 노력해보겠습니다. 부니 스톰퍼스…

숙소 앞에서 떠나는 Gina를 바라보며, 이번 괌 일정에 슬쩍 끼워 넣었던 하나의 ‘Very Difficult’한 계획도 그렇게 끝이 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괌의 트레일이 궁금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단체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걸으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만났다. 결국 이날 내게 오래 남은 것은 길만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낯선 나를 기꺼이 환대해준 Guam Boonie StompersGina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치며

아산 인베이전 하이크는 1.6km라는 짧은 거리와 달리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코스였다. 아나오 클리프가 워낙 거칠고 야생적인 괌의 트레일 환경을 보여준 탓에 상대적으로 덜해 보일 뿐, 아산 인베이전 트레일 역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특히 초입의 물줄기는 상황에 따라 난이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구간이었다. 부니 스톰퍼스가 설치해둔 표식과 로프가 없었다면, 낯선 사람에게는 루트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가장 특별한 경험은 역시 부니 스톰퍼스와의 만남이었다.

 

괌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것은 이들이 어떻게 매주 토요일 하이킹을 이어가는지, 무엇이 그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만드는지였다. 실제로 함께 걸어보니 답은 운영 방식에만 있지 않았다. 참가자를 대하는 태도와 서로를 챙기는 모습, 리더와 참가자라는 관계를 넘어 오랫동안 쌓여온 우정까지. 그들이 만들어온 것은 단순한 정기 하이킹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하나의 하이킹 문화와 공동체에 가까웠다.

 

베러위켄드 역시 오랫동안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서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오티티(On The Trail)와 라이터(Liter) 역시 사람들이 만나고 다시 걷게 되는 계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괌에서는 비슷한 일을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 시작한 걷기를 다음 사람이 이어받고, 다시 그다음 사람이 리더가 되는 일. 마치 바통을 넘겨받듯 지금의 리더들이 그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걷는 땅을 존중하고,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며, 함께 걷는 문화를 오래 이어가려는 사람들.

 

그래서 마지막으로 Guam Boonie Stompers의 리더들에게 조금 더 자세히 물었다.

 

그들은 왜 매주 토요일 걷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걷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어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다.


아산 인베이전 하이킹의 뒷 이야기 : Guam Boonie Stompers 인터뷰

괌으로 떠나기 전, Guam Boonie Stompers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이메일로 먼저 물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과 함께 Asan Invasion Hike를 걸은 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하나로 정리했다.

1. Guam Boonie Stompers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괌에서 ‘Boonie Stomp’라고 불리는 하이킹은 197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는 USO(United Service Organizations)가 하이킹을 운영했습니다. 초창기에는 Joe Chargualaf가 이끌었고, 참가자들은 USO에서 출발해 미 해군 Seabees의 트럭을 타고 트레일 입구까지 이동했습니다.

 

1984년 1월부터는 다른 리더들도 자원봉사로 하이킹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USO가 문을 닫은 뒤부터 2002년까지는 괌 공원·레크리에이션국(Department of Parks and Recreation)이 Boonie Stomp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2002년 5월 31일, Guam Boonie Stompers가 비영리 법인으로 공식 설립되면서 지금의 형태로 하이킹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매주 토요일 하이킹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동기는 하이킹이 참가자들에게 가져오는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매주 누군가는 처음으로 새로운 트레일을 경험하고,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괌에 살면서도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 변화를 보는 것이 우리가 매주 토요일 계속 하이킹을 하는 이유입니다.

3. 토요일 하이킹에는 보통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나요?

보통 12명에서 30명 정도가 참가합니다. 인기 있는 코스의 경우에는 최대 100명 정도가 함께하기도 합니다. 참가자의 배경은 정말 다양합니다. 괌 현지 주민부터 여행객과 관광객, 처음 하이킹을 시작한 사람, 오랫동안 함께해온 멤버, 현역 군인과 퇴역 군인까지 모두 함께 걷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초보 하이커들은 주로 난이도가 쉬운 코스를 선택합니다.

 

4. 실제로 함께 걸어보니 처음 참가한 사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참가자를 맞이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Guam Boonie Stompers에는 차모로 문화의 ‘Håfa Adai’ 정신과 같은 환영의 문화가 있습니다.

 

하루의 하이킹을 마친 참가자가 웃으며

 

“다음 주에는 어디로 가나요?”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정말 환영받았다고 느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5. 사람들이 계속해서 Boonie Stompers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안전하고 체계적인 하이킹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산과 계곡, 해안 트레일, 폭포 등 코스도 매우 다양하고 난이도 역시 폭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하이킹 모임만은 아닙니다.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을 아끼는 공동체입니다. 누군가 처음 하이킹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영받고, 격려받으며 자연스럽게 ‘Boonie Family’의 일원이 됩니다.

 

6. 자원봉사 하이킹 리더는 어떻게 선발되고 교육되나요?

모든 리더는 하이킹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괌의 아름다움을 지역사회와 나누고 싶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의지와 단체에서 쌓은 하이킹 경험, 그리고 배우려는 자세 등을 바탕으로 선발합니다.

 

선발된 뒤에는 약 3개월 동안 선임 리더들과 함께 수습 기간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안전관리, 운영(Logistics), 길찾기(Navigation) 등을 배우고, 이후 정식 리더가 됩니다.

7. 거의 매주 다른 장소를 걷는데, 연간 하이킹 일정은 어떻게 정하나요?

매 분기마다 리더들이 모여 지난 하이킹을 돌아보고, 기존 트레일과 새로운 트레일 목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합니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쉬운 코스부터 숙련된 하이커들을 위한 어려운 코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일정표를 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자주 찾는 대표적인 코스로는 Pagat Cave & Coast, Ague Cove, Talofofo Caves, Tarzan Falls 등이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일조량과 강수량, 조수 등을 고려해 코스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유적이나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하이킹,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하이킹도 운영합니다.

 

8. 괌의 트레일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괌의 트레일에서는 매우 다양한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토착 식물이 자라는 석회암 숲과 다공성의 날카로운 암석 지형, 담수 동굴을 지나기도 합니다. 산등성이에 올라 섬과 계곡, 태평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코스도 있고, 강을 여러 번 건너거나 연속된 폭포를 만나는 코스도 있습니다.

 

울창한 열대우림을 지나면 고대 차모로의 라테(Latte) 유적이나 토기 유물,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만나기도 합니다.

9. 괌에서 하이킹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괌은 습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기 전에는 기후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진흙길, 특히 우기에는 모기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충분한 물과 적절한 등산 복장, 장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괌의 더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체력을 소모시키기 때문에 탈수와 열탈진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오는 하이커라면 처음부터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기보다 쉬운 코스나 중급 코스로 시작하고, 가능하다면 최소 2~3일 정도 현지 기후에 적응하기를 권합니다.

 

10. 열 번의 하이킹을 완주하면 티셔츠를 받을 수 있다는 전통도 재미있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문화인가요?

약 30년 전,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하이킹을 계속할 동기를 주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장의 티셔츠를 나누어 주었는지는 따로 집계하지 않습니다. 티셔츠를 따로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도 많았지만, 우리는 반드시 Boonie Stompers와 최소 10번의 하이킹을 완주한 사람에게만 티셔츠를 준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11. 티셔츠를 받은 뒤에도 계속 함께 걷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네, 아주 많습니다.

 

그중 일부는 지금 Boonie Stompers의 리더가 되어 있습니다. 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를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10년 넘게 함께한 참가자들은 이제 리더만큼이나 트레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이킹 브리핑을 시작할 때 그런 분들을 소개하며 감사를 전합니다. 실제로 하이킹 중에도 필요할 때마다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이킹을 통해 평생의 친구를 만난 사람도 있고, 이곳에서 배우자를 만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12. 오래된 멤버들만 알아볼 수 있는 Boonie Stompers만의 문화나 농담도 있을까요?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참가한 사람들은 우리가 가끔 길을 잃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웃음) 괌의 지형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리더와 하이커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길을 한 번쯤 잃지 않으면 진짜 Boonie Stomp가 아니다.”

13. 자연을 계속 많은 사람에게 개방하는 것과 트레일을 보호하는 것은 때때로 충돌하기도 합니다. Boonie Stompers는 그 균형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Guam Boonie Stompers는 설립 초기부터 트레일 보전과 환경 보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왔습니다. 괌의 자연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섬의 지도자들에게 전달해왔고, 동시에 사람들이 하이킹 트레일에 계속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또 모든 참가자들에게 하이킹 중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행동을 실천하도록 권장합니다.

 

14. 앞으로 괌의 하이킹 문화가 직면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제 개발과 군사력 증강이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트레일과 괌의 아름다운 자연에 사람들이 계속 접근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15. 한국의 하이커들이 처음 Guam Boonie Stompers를 알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해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단순히 하이킹을 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존중과 격려, 그리고 괌에 대한 공통된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하이킹 경험이나 체력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환영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장 빨리 완주하는 사람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즐겁고 보람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며,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이 땅을 존중하고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며, 우리가 처음 찾았을 때보다 더 좋은 상태로 남겨두기 위해 노력합니다.

 

16. 마지막으로, 왜 ‘매주 토요일’이라는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전통은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줍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서로 다른 배경과 연령,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일상의 바쁨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의 모험을 함께합니다. 트레일에서는 우정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오가며,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쌓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이 사람들에게 괌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문화를 평생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번의 하이킹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회이고, 자신감을 키우는 과정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Author

양광조
  • Event Manager / Communications Lead

Interviewee

Guam Boonie Stompers
  • 괌의 비영리 하이킹 단체
Photo doodler | Sony α6700 + Sigma C 18-50mm

'Guam Trail' 시리즈 보기

  • 1. 괌 트레일 시리즈 1부 : 아나오 클리프 하이킹
  • 2. 괌 트레일 시리즈 2부 : 아산 인베이션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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