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브랜드는 늘 새로운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더 가볍고, 더 따뜻하고, 더 뛰어난 소재와 기능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랩(Rab)이 한국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은 신제품이 아니라 ‘오래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영국 아웃도어 브랜드 Rab은 한국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기념해 서울을 찾았습니다. 행사에는 CEO 리차드 리드햄(Richard Leedham)과 글로벌 마케팅을 총괄하는 CMO 존 프레더릭(Jon Frederick)이 참석했습니다.
새로운 매장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지만 두 사람이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오래 쓰는 장비, 수선, 소재의 출처, 그리고 책임 있는 비즈니스였습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로 성장한 Rab이 지금 다시 강조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교체하기보다 수선하고,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는 것.
CEO 리차드 리드햄은 한국을 Rab이 오랫동안 성장해온 중요한 아시아 시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Rab은 영국에서 시작해 북미와 유럽으로 시장을 넓혔고, 현재는 아시아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리드햄은 중국에 이어 한국을 방문했고 이후 일본으로 이동하는 일정 속에서도 한국 시장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한국은 Rab이 오랜 시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브랜드를 성장시켜 온 아시아의 주요 시장이며, 우리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 파트너인 호상사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편, 이번 방문에서 매장과 물류 시설뿐 아니라 리페어 시설까지 직접 둘러봤다고 말했습니다. 이 지점은 꽤 중요합니다.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가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판매 이후의 제품을 다시 고쳐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Rab이 이야기하는 지속 가능성은 새로운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하는가까지 포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CEO가 한국에서 리페어 시설을 직접 확인한 것은 단순한 현장 방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Rab이 글로벌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이 한국에서도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발표에 나선 존 프레더릭은 Rab의 역사를 설명하며 브랜드의 시작점으로 돌아갔습니다. Rab은 영국 출신 알파인 클라이머 랩 캐링턴(Rab Carrington)이 만든 브랜드입니다.
그는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던 시절 침낭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영국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의 집 다락방에서 직접 침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의 클라이머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제품 개발팀이나 대규모 생산 시설이 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산에서 실제로 사용할 장비가 필요했고, 그것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Rab이 지금까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브랜드 철학 역시 이 시작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장비는 실제 환경에서 잘 작동해야 하고, 필요 이상으로 복잡할 이유가 없으며,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프레더릭은 이날 창립자 랩 캐링턴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Nothing fancy or over-engineered, just honest, hard-working pieces that you'd rather repair than replace.”
Rab을 설명하는 여러 문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장일 수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과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 역할을 하고, 교체하기보다는 수선해서 계속 사용하고 싶은 장비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아웃도어 시장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소개합니다. 더 가벼운 소재, 더 높은 투습도, 더 새로운 멤브레인과 단열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좋은 장비를 만드는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장비를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역시 중요한 성능입니다. Rab이 이야기하는 내구성은 단순히 원단이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보다 넓습니다.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손상됐을 때 수선하고, 다시 산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전체를 포함합니다. 존 프레더릭은 이를 보다 간단하게 표현했습니다.
“좋아하는 재킷이 있다면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찢어지면 고치고, 패치를 붙여 다시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장비를 오래 사용하는 것. Rab이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아웃도어 산업에서 지속 가능성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재활용 원단, PFAS 프리 가공, 재생 다운, 바이오 기반 소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 영향을 줄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Rab 역시 이런 변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발표에서 Rab이 강조한 지속 가능성은 소재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어떤 소재로 만드는가만큼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하게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제품을 수선해 수명을 연장하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횟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하나의 제품을 오래 사용할수록 그 제품에는 사용자의 경험도 함께 쌓입니다. 결국 내구성과 수선 가능성은 환경적인 문제인 동시에 장비를 사용하는 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Rab은 올해 B Corp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존 프레더릭은 B Corp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특정 소재나 제조 공정 하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고 싶습니다.”
B Corp은 기업의 환경적 영향뿐 아니라 구성원, 공급망, 기업 운영 방식 등 사업 전반을 평가합니다. Rab이 B Corp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품을 어떻게 만들고, 직원과 어떻게 일하며, 공급망을 어떻게 관리하고, 판매 이후 제품을 어떻게 책임지는지까지 연결돼야 합니다. Rab에게 오래 쓰는 장비라는 철학 역시 이런 구조 안에 있습니다.

Rab이 이날 지속 가능성의 구체적인 사례로 소개한 것은 Pertex NetPlus입니다. NetPlus는 사용을 마친 폐어망을 수거해 다시 섬유로 만드는 소재입니다.
바다에서 사용된 어망을 수거하고, 이를 잘게 분쇄해 플라스틱 펠릿으로 만든 뒤 다시 실과 원단으로 가공합니다. Rab은 이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칠레에 영상과 사진 팀을 보내 실제 어망 수거와 재활용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영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어망을 바로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부들은 먼저 어망을 반복해서 수선합니다. 고칠 수 있는 동안 최대한 오래 사용하고, 더 이상 본래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소재가 됩니다. 이 과정은 Rab이 장비를 바라보는 방식과 닮았습니다.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다른 쓰임을 찾습니다.
“Sometimes it takes breaking something down to make it better.”
무언가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기존의 것을 해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Rab에 따르면 NetPlus는 신규 원단과 비교해 에너지 사용량을 68%, 화석연료 사용량을 67%,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물 사용량을 70% 줄일 수 있으며 원료의 출처 역시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재가 흥미로운 이유는 숫자만은 아닙니다. 사용하고, 고치고, 다시 사용하고, 마지막에는 다른 제품의 원료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Rab이 말하는 제품의 생애주기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Rab은 이제 한 명의 클라이머가 다락방에서 침낭을 만들던 작은 브랜드가 아닙니다. 북미와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사업을 전개하는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한국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Rab이 다시 꺼낸 이야기는 40여 년 전 브랜드가 시작됐던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장비를 만들고, 오래 사용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고쳐서 다시 사용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는 또 다른 쓰임을 찾습니다.
장비는 결국 소비재입니다. 하지만 Rab은 소비보다 사용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웃도어 시장에서는 매년 더 가볍고 더 뛰어난 새로운 장비가 등장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소재 역시 좋은 장비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좋은 장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닐 것입니다.
교체하기보다 수선하는 것.
40여 년 전 다락방에서 침낭을 만들던 작은 브랜드가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좋은 장비의 기준이 기술의 변화만큼 빠르게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장비는 얼마나 새로운가보다, 얼마나 오래 함께할 수 있는가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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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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