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닦인 4차선 도로에 차가 없다. 사람도 없다. 뜨겁다...멀리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게 보인다. 연신 울리는 폭염 재난문자에 지쳐 이미 재난 알람은 꺼둔지 오래다. '떠나라! 가지 못할 이유가 더 늘기전에..'라는 말이 있지만 이런 폭염이야말로 바이크패킹을 가지 못할 이유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다.
오전이라 영업 중인 식당이 별로 없었던 탓에, 그나마 문을 연 식당에 가서 아주 뜨거운 소고기 국밥(아주 맛있었다)으로 배를 채웠다. 식당에서 앉은 자리가 하필 에어컨 바람이 잘 닿지 않아서 땀 범벅이 되었다. 뭔가 이런 상황이 바보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서 웃었다.
이번에는 충북 음성의 맹동면에서 출발해서 맹동저수지 일대의 그래블 코스를 타기로 했다. 백야휴양림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차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준비한 야영장비를 자전거에 설치하는 동안 이미 옷이 다 젖어버렸다. 대단한 더위였다.(경남 양산은 이 날 39도로 관측되었다고 했다.) 힘겹게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타면 약간의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아주 조금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발해서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코스의 초입인 맹동낚시터 입구가 나온다. 여길 지나면 비포장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익히 들었던 대로 맹동저수지는 아주 좋은 그래블 코스였다. 험하지 않고 업다운도 심하지 않았다. 예전에 울진 등지에서 하드테일 MTB로 바이크패킹을 할 때, 훨씬 거친 임도를 탔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에는 과히 비단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하필 내 주변에 더 많은 파리가 꼬여서 곤욕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던 파리떼의 습격이었다. 날씨도 더운데다가, 아마 물이 흐르지 않는 저수지라서 그랬을게다. 어마어마한 파리떼가 저수지 일대를 통과하는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나중에서야 저수지 쪽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중간에 잠깐 휴식할 때 찍은 건 있긴 하지만) 알게 되었다.
더운 날씨 탓에 잠깐 타고 오래 쉬기를 반복했다.
멋진 풍경들을 수도 없이 지나쳤지만 잠시 자전거를 세워서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파리떼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강선희 편집장은 1993년식 스페셜라이즈드의 락하퍼를 탔는데, 타면 탈수록 자전거의 일부가 헐거워지거나 급기야 분해되기까지 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었다. 안장 고정 볼트가 헐거워져 안장코가 점점 올라가거나 브레이크 케이블이 프레임에서 빠진 것은 사소한 문제였고(금방 해결 가능한), 급기야 캔틸레버 브레이크의 장착 나사가 빠져버려서 앞 쪽 브레이크암이 분리되어 버렸다. 앞 브레이크를 못쓴 다는 것은 안전과 관련된 치명적인 문제라서 자칫 더이상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끝내버려야 했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내 자전거의 전조등 고정 볼트가 규격이 같아서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자 하도 어이가 없다보니 심각함을 넘어서서 웃길 지경이었는데, 어쨌든 이 또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함께 헤쳐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었겠는가.
명심하자, 바이크패킹을 가기 전에는 꼭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맹동저수지 쪽을 벗어나와서 휴양림으로 가는 길목에 지도상으로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온통 머릿속은 시원한 음료수를 마셔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미 오후 다섯시가 지난 시점이었고, 체인점이 아닌 동네 편의점이라서 문을 닫았을 지도 모르는 상황. 감사하게도 아직 영업중이었다.(이 편의점은 며칠 뒤 공사를 시작해서 세븐일레븐으로 오픈한다고 한다.) 수분을 보충하면서 기력을 어느정도 회복했다.
휴양림에 가기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오르막을 넘어야한다. 최근 꾸준한 러닝의 효과인지, 더워서 힘든 것을 제외하면 체력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없었던 급격한 오르막의 임도가 계속 이어지자 빠른 속도로 체력 게이지가 줄어들더니 결국 이 지점에서 준비한 체력이 모두 바닥나버렸다. 휴양림까지는 지척이지만, 휴양림까지 이어진 마지막 임도로 진입하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 우회도로로 내려가니 아주 빠르고 편안하게 도착했다.
캠핑장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아늑했고, 늦은 시간까지 해가 내리쬐지 않아 늦잠을 잘 수 있었다. 축축해진 텐트와 야영 장비들이 충분히 마르길 기다리면서 아침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길 너머에 웃통을 벗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백야휴양림을 몇 일 동안 베이스캠프로 해서 트레일러닝이나 자전거라이딩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가장 늦게 일어난 강선희 편집장
흐르는 땀 때문에 선크림을 바르는 것은 애초부터 그만두었었다. 땀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가서 따가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핸들에서 손을 뗄 수가 없으니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계속 달려야 했다. 완만하지만 지루하게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자외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좁은 1차선 도로라서 중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쉴 곳도 마땅찮은 탓에 그저 페달을 밟을 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힘들다.. 견디자..아니야, 잠깐 멈출까..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다가 마치 러너스하이처럼 고통이 사그러지는 것이 느껴질 때 쯤 오르막은 끝나 있었다.
무엇하러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만, 지루한 오르막 끝에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 만큼 큰 보상도 없다. 차가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 그 옆으로 울창한 나무들, 하늘엔 뭉게구름과 내리막에서의 시원한 바람... 이 순간만큼은 힘들었던 기억은 이미 씻겨지고 없다. 고작 1박 2일의 매우 짧은 일정이었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천천히 페이드아웃 되듯이, 이 내리막을 마지막으로 이번 바이크패킹도 막을 내리는 듯 했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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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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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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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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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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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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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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