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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정선에서 열렸던 오티티(Ott, On The Trail)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오티티는 '온 더 트레일'이 전부였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 세상이 바뀌어서 이제는 오티티를 검색하면 넷플릭스 같은게 먼저 나온다.

 

긴 시간이었다. 올해는 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도 다시 코로나가 확산세로 돌아선다는 뉴스를 들을 때면 올해도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2022년 오티티는 무사히 개최됐다.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실감이 나질 않다가 날짜가 다가오니 진짜 하긴 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

 

2018년에 강원도 고성에서 열렸던 오티티가 떠오른다. 그 때가 나의 첫 오티티였다. 부산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타고 올라갔는데, 도착했을때가 새벽 다섯시 무렵이었다. (그 때는 전날 먼저 도착해서 야영을 할 수 있었다) 야영장소를 못찾고 헤매는 바람에 당시에 일면식도 없었던 강선희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잠을 깨우고 말았는데, 그때 일은 잊을만 하면 다시 얘기가 나와서 아직도 욕을 먹는다. 나는 제주, 가평, 정선에서 열렸던 오티티에도 계속 참여했고, 오티티 후기를 베러위켄드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베러위켄드 에디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컨텐츠에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함께한 것이 계기가 돼서, 이번 오티티 경주에서는 참가자가 아닌 사진 담당 스텝으로 참여하게 됐다.

 

베러위켄드의 포토그래퍼 손병재, 케일(CAYL)의 포토그래퍼 김희진과 함께 셋이서 이번 오티티의 사진을 담당했다. 라이튼 클라이밍(LIGHTEN CLIMBING ™)의 동철씨는 영상을 맡았다. 전날 저녁, 막바지 준비를 마치고 촬영팀은 우리가 묵었던 울주군 소재의 낡은 모텔 502호에 모였다. 구체적으로 각자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촬영할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사뭇 진지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보단 각 포인트에 참가자들이 도착할 시간을 예측해서 코스 중간 주요 지점에 포토그래퍼를 적절히 배치하는게 중요했다. 선두와 후미까지 가능한 한 많은 참가자를 놓치지 않고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병재형은 어떻게 촬영할지 계획표까지 만들어 오는 열정을 보여줬다. 일찍 자야했지만 생각보다 회의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새벽 어스름부터 출발지에 참가자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7시가 지나자 금세 북적거렸다. 반가움과 기대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뒤섞여 사람들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만 3년만이 아닌가. 거의 9시가 되었을 무렵, 마지막 참가자가 등록을 마치고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뒤, 촬영팀은 고헌산 인근의 임도까지 차로 이동했다. 참가자들과 반대로 고헌산 정상으로 올라가 선두그룹부터 촬영할 생각이었다.

 

반대 방향에서 고헌산에 오르는 길에 이미 선두그룹은 고헌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였다. 출발점부터 약 1000미터 고헌산 정상까지 쉼없이 오르는 길은 이번 오티티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정상석 주변에는 이미 도착한 참석자들로 왁자지껄했다. 한숨 돌린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떠나기 시작했고, 후발주자들도 속속 고헌산에 도착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다친 분이 있어서 일단 하던거 마무리하고 부상자 태워서 바로 캠프로 와요."

 

참가자들과 함께 섞여서 고헌산에서 내려와 다음 봉우리인 백운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강선희 편집장에게 연락이 왔다. 원래는 백운산까지 갔다가 오후 2시 경에는 차로 돌아와서 CP(check point)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결국 백운산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갔다. 이미 모든 참가자들이 지나간 뒤의 길은 적막했다. 차를 세워둔 곳에 거의 도착하니 스위퍼(가장 뒷쪽 담당 스텝)를 담당하는 재훈이형, 종육이형, 그리고 부상을 당한 참가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자를 인계하고 스위퍼 둘은 서둘러 출발했다.

 

캠프까지는 차로 한시간 정도 걸린다. 초면인 분과 둘이서 차를 타고 한시간이나... 숨이 막힐것 같았지만 의외로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부상을 당한 참가자는 고헌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쳤다고 한다. 자잘한 돌이 많아 미끄러운 구간이었다. 무릎이 거의 굽혀지지 않는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가보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스텝이 만류했다고 한다. 함께 참가한 일행만 보내고 결국 포기하기로. 백패킹을 시작하면서 오티티에 꼭 참가하고 싶었다고, 어렵게 티켓을 구해서 참가한 첫 오티티인데, 코스 초반에 포기해야 해서 너무 아쉽다고.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다음 오티티를 기약하면서 얼른 회복하시기를!

 

지난 9월 17일, 10명의 베러위켄드 멤버들이 테스터로 참여해서 오티티 코스 전체를 답사했다. 출발지점부터 캠프까지, 테스터들의 평균 기록은 11시간 정도였다. (나는 코로나 감염으로 불참했는데, 아마 참가했다면 평균 기록이 훨씬 늘어났을 듯) 참가한 10명 중 3명은 중간 포기했다. 이유는 답사 중 길을 잃어 잘못된 방향으로 한참 이동한 탓에 멘탈 문제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유난히 더웠던 날씨로 인한 물 부족이었다.

 

이런 이유로, 참가자들의 1일차 평균 소요시간 역시 11시간 정도, 또는 그 이상으로 예상했다. 가장 빠른 참가자라고 해도 도착시간이 오후 4시 이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3시도 안되어서 이미 선두 주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걷기에 너무 좋은 날씨이긴 했지만, 아침 7시에 스타트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7~8시간만에 도착한 셈이다. 너무 빠른 속도에 스텝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그래.. 답사 땐 너무 더웠잖아..

 

화랑의 언덕은 핑클이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던 [캠핑클럽]에 등장한 장소로 유명하다. 평소에 캠핑장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오티티를 위해서 섭외했다. 예전에 강선희 편집장과 함께 이곳으로 답사를 왔었다. 드론을 띄워 상공에서 바라본 캠프장의 모습을 확인했다. 넓은 들판이 수많은 텐트로 메워질 생각을 하니 벅차올랐다. 그 장면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졌을 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을 무렵,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캠프는 형형색색의 텐트들로 수놓아 지기 시작했다. 노을은 아름답지만 찰나에 지나가 버린다. 첫 날 피니쉬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다가 잠깐 뜸한 틈을 타 후다닥 캠프로 뛰어가 노을진 캠프의 사진을 찍었다. 캠프 너머 참가자들이 도착하는 환호성 소리는 어둠이 내리고 한참 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둘째 날 커피타임은 오티티의 묘미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오티티 둘째 날, 약간 쌀쌀한 새벽 공기와 함께 마시는 향긋한 커피와 아침의 풍경을 특히 그리워 한다. 리액터를 이용해서 수많은 참가자가 마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리는 장면은 오티티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지난 7월, 부산 전포동에 있는 베르크 로스터스(@werk.roasters)에서 베러위켄드 팝업 스토어를 열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는 베르크 로스터스의 대표 바리스타가 직접 참가해서 베르크의 스페셜티 커피를 선보여 특별함을 더했다.

 

2일차 코스를 출발하는 참가자들을 촬영했다. 사실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 출발하시는 몇 분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줄줄이 계속 이어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찍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을 찍게 되었다. 나는 참가자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화이팅을 외쳤다. 감사하게도 모든 참가자분들께서 카메라를 향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셨다. 작업해야 할 컷수는 늘어났지만 시종일관 밝은 표정의 참가자들의 사진을 편집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작업하는 내내 뭔가 흐뭇해져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더라.

 

몇일 전 오티티 경주의 공식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영상을 보고 또 본다. 1박 2일간의 장면들을 꾸밈 없이 담백하게 풀어낸 영상에서 그 날의 현장감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모든 장면이 좋지만 참가자 중에서 거의 마지막 즈음에 골인에 도착한 네 분이 피니쉬 라인에서 부둥켜 안고 방방 뛰는 짧은 장면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 때 스텝들은 감정을 더욱 격앙시키려고 일부러 계속해서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네 분 중에서 한 분을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피니쉬에서 많은 영상이 담기지는 못했지만 그 장면을 놓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짖궂게 환호성을 쳤지만 그 자리에 있던 스텝 중에서 속으로 울컥 했던 사람은 아마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우리의 삶의 가치가 각각 다르듯이 하이킹, 백패킹을 하면서 추구하는 바는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하던 초창기의 하이킹은 함께 먹고 자는 즐거움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한 형태의 여행을 거듭하며 알게 된것은 야영지에서의 시간보다 걷는 시간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이 걷고 조금 더 그 길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불필요한 장비를 제외하는 간소화, 필수 운용 장비의 경량화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걷는 것에 집중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오티티는 그 중에 가장 큰 프로젝트 였습니다."

 

『오티티 2016 컨트리웨이와 낙동정맥 트레일 이야기』 中

 

Ott 2015 Free Hike Day 로 2015년에 시작된 오티티가 2022년 경주에서 10회째를 맞이했다. 총 참가자 350명을 모집해서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치뤄졌고, 티켓이 매진되는데 불과 37초가 걸렸다. 이렇다할 부대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념품을 제공하는것도 아닌데 오티티는 어떻게 많은 하이커들에게 사랑받는 이벤트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하이킹 문화에 공감하고 지속적으로 동참해주시는 많은 하이커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티티를 통해서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건전한 하이킹 문화가 계속해서 자리잡길 바란다.

 

 

  • Organizer Better Weekend
  • Main Sponsor Big Agnes
  • Headline Sponsor Arc'teryx, Scarpa
  • Sub Sponsor hikerhaus Vovo, WERK, 물따로, 더널리
  • Director 강선희
  • Photo 손병재, 리동현, 김희진
  • Video 신동철
  • CP 조현수, 김민환, 이의재, 하준호
  • Sweeper 송종육, 양일웅, 이재훈, 송영훈
  • Staff of Betterweekend 김효정, 김율해, 강재희, 김봉래, 이경수, 손병수

Author

이동현
  • Editor
  • Filmer
Photo Son captain, reedong, kim hee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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