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가는 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십년 가는 브랜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며, 잘 나가는 브랜드도 언젠가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더러는 애초의 정신은 간데없고 매출에만 급급한 싸구려 브랜드로 변질되어 실망하기도 한다.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산악 활동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극지방 탐험 활동이 활발했던 유럽은 일찍부터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마무트(Mammut), 옵티머스(Optimus), 프리머스(Primus), 한바그(Hanwag), 하그로프스(Haglöfs) 등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북미 브랜드들은 대부분 1960년대 이후에 설립되었다. 그나마 1900년 설립되어 주로 가솔린 램프를 만들던 콜맨(Coleman)이 가장 오래된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중 하나다. 100년 이상 장수하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브랜드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관련하여 내가 기억하는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고라이트(GoLite)의 갑작스러운 파산 소식이었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합종연횡은 빈번한 일이다. 한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는 기업공개가 되지 않은 개인 회사이거나 가족이 소유한 경우가 많고 산업 기반도 취약한 편이라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안정적인 시장을 가진 해외 글로벌 브랜드들은 투자 자본의 전략에 의해 인수와 합병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Outdoor Retailer Show
2014년 6월 19일 쌤소나이트가 등산용 배낭으로 유명한 그레고리(Gregory Mountain Products)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쌤소나이트는 이미 2013년에 아웃도어 가방 브랜드인 하이시에라(High Sierra)를 인수한 데 이어 그레고리를 8천 5백만 달러(약 900억 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그레고리는 3,06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10억 원)에서 2013년 14.3% 증가한 3,490만 달러 (당시 환율 기준 약 3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이시에라와 그레고리를 인수하면서 쌤소나이트는 여행용 가방에서부터 전문 등산용 배낭과 캐주얼 가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레고리는 원래 블랙다이아몬드를 소유하고 있던 클라루스 코퍼레이션(Clarus Corporation)이 소유한 브랜드였다. 클라루스는 2010년에 블랙다이아몬드와 그레고리를 1억 3천 5백만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클라루스는 현재 블랙다이아몬드 이외에 총알을 생산하는 시에라 불릿(Sierra Bullets)과 산악구조용 비콘을 생산하는 오스트리아의 핍스(PIEPS)를 소유하고 있다.
아크테릭스(Arc'teryx)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특히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2001년에 살로몬(Salomon)이 아크테릭스를 매입했으며, 매입 당시에는 아디다스(Adidas)가 소유하고 있었다.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는 아웃도어 시장 진출에도 관심이 많아서 2011년 암벽화 제조사인 파이브 텐을 2,5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6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현재 아크테릭스는 핀란드에 기반을 둔 아머(Amer)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아머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은 살로몬 이외에 아웃도어 시계 브랜드인 순토(Suunto)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윌슨(Wilson), 유럽의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인 피크 퍼포먼스(Peak Performance) 등이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아머 그룹은 중국의 안타 스포츠(Anta Sports Products Limited)의 자회사라는 점이다. 불과 1994년에 설립된 안타 스포츠는 아크테릭스를 포함하여 25개의 브랜드를 거느린 초대형 공룡이 되었으며, 2019년 기준으로 매출 20억 7천만 달러(한화 약 2조 4천억 원)의 글로벌 기업이다.
유럽 아웃도어 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스위스의 마무트(Mammut Sports Group AG)이다. 마무트는 1862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웃도어 브랜드 중 하나인데 등반용 로프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2003년 등산화 전문 브랜드인 라이클(Raichle)과 노르웨이의 침낭 전문 브랜드인 아융기락(Ajungilak)을 인수하면서 사업 규모를 크게 확장했다. 2006년에는 독일의 헤드램프 브랜드인 루시도(Lucido)를 인수했다. 루시도의 헤드램프 TX1은 2006년 아웃도어 인더스트리 어워드를 수상했는데 당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제품이었다. 지금 나오는 마무트의 헤드램프는 루시도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피엘라벤(Fjällräven)이 있다. 북극 여우를 뜻하는 피엘라벤은 1960년 설립된 스웨덴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의류, 장비 브랜드이다. 원래 가족 회사로 출발하여 배낭을 만들기 시작했고, 점차 라인업을 늘려 나갔으며, 내구성이 우수하고 내추럴한 디자인으로 북유럽 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피엘라벤은 피닉스 아웃도어(Fenix Outdoor International AG)에 속한 브랜드다. 피닉스 아웃도어는 피엘라벤 이외에도 등산화 전문 브랜드인 한바그(Hanwag), 나침반으로 유명한 브런톤(Brunton), 전문적인 등산 의류 브랜드인 티에라(Tierra)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2002년에는 1892년 설립된 스토브의 명가 프리머스(Primus)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다소 의외의 브랜드로는 미국의 암벽등반가 로열 로빈스이 자기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의류 브랜드 로열 로빈스(Royal Robbins)도 피닉스 아웃도어에 속해 있다. 피엘라벤은 2012년부터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유럽과 미국의 자연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북유럽은 추위와 눈보라 등의 거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아웃도어 활동을 고려해 제품을 만드는 반면, 미국은 대부분 건조한 날씨에서 즐기는 아웃도어 활동을 고려하여 제품을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유럽은 북유럽 특유의 감수성이 반영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데 비해 미국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제품이 인기가 높다. 영업 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보통 지역마다 세일즈 렙(Sales representative)을 두고 영업 활동을 하는데 미국 로컬 브랜드가 당연히 영업력에서 크게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세일즈 렙이라고 영어로 얘기하면 세련되어 보일지 몰라도 그냥 우리말로 하면 ‘지역 총판’쯤 되는데, 이들이 미국 유통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아주 막강하여 세일즈 렙이 누구인지에 따라 미국 시장 진출 성공 여부가 좌우되기도 한다.
북유럽의 또다른 대표 브랜드는 하그로프스(Haglöfs)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14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하그로프스는 아식스(ASICS)가 소유하고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일본의 아식스는 아웃도어 시장 진출을 위해 2010년 하그로프스를 전격 인수했다.
정수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카타딘 그룹(Katadyn Group)은 카티딘 이외에 건조식량 브랜드인 알파인에어(AlpineAire), 자외선을 이용한 정수기로 한때 주목받았던 스테리펜(Steripen)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프리머스의 경쟁 브랜드였던 스웨덴의 스토브 브랜드인 옵티머스(Optimus)를 인수했다.
북유럽 출신의 브랜드보다는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1930년 설립된 프랑스의 라푸마 그룹(Lafuma Group)도 유럽에서는 아웃도어 비즈니스의 선두 그룹에 속해 있다. 배낭 생산으로 출발한 라푸마 그룹은 라푸마 브랜드 이외에도 밀레(Millet), 아이더(Eider)와 같은 빅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라푸마 그룹에 속한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데 라푸마는 몇 해 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밀레와 아이더는 서로 다른 회사의 소유로 경쟁 관계에 있다.
우모 제품으로 유명한 랩(Rab)을 소유한 영국의 이큅 아웃도어 테크놀로지(Equip Outdoor Technologies Ltd.)는 2017년 캐나다 브랜드 인테그랄 디자인(Integral Designs)을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이큅 아웃도어 테크놀로지는 인테그랄 디자인을 인수한 후 독자 브랜드로 전개하지 않고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랩의 제품에 통합해 이제는 인테그랄 디자인 이름의 제품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 외에도 배낭으로 유명한 로우 알파인(Lowe Alpine)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아웃도어 비즈니스 종사자들은 흔히 일본 시장이 한국의 3배, 미국 시장은 일본의 3배 정도라고 말한다.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인 아이비스월드(IBISWorld)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약 363억 달러(한화 약 41조 9천억 원)로 세계 1위이며, 그 뒤를 이어 중국이 205억 달러(한화 약 23조 6천억 원), 우리나라는 21억 달러(한화 약 2조 4천억 원)였다. 우리나라는 2014년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7조 1천억 원까지 치솟은 적이 있으나 의류 중심으로 버블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은 장비도 매우 안정적인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2019년의 하이킹을 포함한 아웃도어 장비 매출 규모가 약 70억 달러(한화 약 8조 1천 억 원)였으며, 그중 텐트 시장 규모는 도매 기준으로 3억 6천 800만 달러(한화 약 4,260억 원)였다.
미국의 아웃도어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회사는 당연히 VF 코퍼레이션(VF Corporation)이다. VF의 2019년 매출은 138억 달러(한화 15조 9천억 원)로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스포츠 의류 업체를 제외한 아웃도어 분야에서는 세계 1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VF가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웃도어 브랜드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를 필두로 가방 브랜드인 이글 크릭(Eagle Creek), 이스트팩(Eastpak), 잔스포츠(Jansport)를 소유하고 있어 미국 가방 시장에서 50% 이상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신발 브랜드인 팀버랜드(Timberland)와 울 제품 브랜드인 스마트울(Smartwool), 스트릿 패션 브랜드인 반스(Vans)도 VF가 소유하고 있다. 2018년에는 최근 수년간 급성장한 러닝화 브랜드인 알트라(Altra Running)를 인수하기도 했으며, 2020년 11월에는 가장 인기 있는 스트릿 브랜드인 슈프림(Supreme)을 2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장비 쪽으로는 엑셀 아웃도어(Exxel Outdoors)가 있는데 엑셀은 텐트와 백팩으로 유명한 켈티(Kelty), 텐트의 명가 시에라 디자인(Sierra Designs), 침낭 브랜드인 슬럼버잭(Slumberjack), 울트라 러너를 위한 웨어러블 장비 브랜드인 UD(Ultimate Direction) 등을 소유하고 있다. 엑셀은 2015년에 켈티와 시에라 디자인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웃도어 비지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미국의 아웃도어 시장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콜맨과 마모트(Marmot)는 뉴웰 브랜즈(Newell Brands)가 소유하고 있다. 뉴웰 브랜즈는 아웃도어 브랜드뿐 아니라 로트링(rOtring), 파커(Parker) 등과 같은 필기구 브랜드, 유모차로 유명한 아프리카(Aprica) 유아용품 브랜드인 누크(Nuk)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미국 아웃도어 시장의 또 하나의 큰 손은 컬럼비아 스포츠웨어(Columbia Sportswear)다. 컬럼비아는 자체 브랜드 이외에도 신발 브랜드인 소렐(Sorel), 트레일 러닝화로 유명한 몬트레일(Montrail), 독창적인 요가복 브랜드였던 프라나(Prana)를 소유하고 있으며, 2003년에는 마운틴 하드웨어(Mountain Hardwear)를 인수했다.
To be continue…
2021년 3월, '인사이드 아웃도어'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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