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200여 종 이상의 영장류가 있고, 그중 단 한 종만이 두 다리로 걷는다.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기후 변화로 숲 지대가 줄어들고 점차 초원으로 변하고 있던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백만 년 동안 악전고투를 벌이며 겨우겨우 종의 번식을 이어왔다. 그동안 다양한 친척 무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풍부한 과일을 제공하던 숲은 줄어들었고, 개체수가 점점 늘어난 유인원들 간의 먹이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나무 위에서만 살 수는 없게 되었다.
너클보행(knuckle walking)에서 완전한 직립보행으로의 인류 진화. 물론 인류는 그림처럼 단일종에서 출발해 단계별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분화를 거쳐 현생인류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진화인류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있기까지 최소 24종의 고대 인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석 발굴로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인류는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데니소반스(데니소바인) 그리고 수만 년 동안 현생 인류와 같은 영역에서 경쟁했던 것으로 알려진,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 네안데르탈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오늘에 이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왜 그들은 다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는가?
오늘 저녁 한강변에서 러닝을 하거나 주말에 하이킹을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사해야 할 역사적 이벤트가 하나 있다. 수백만 년 전 어느 날 인류 조상 중 하나가 두 다리로 우뚝 선 ‘직립보행’이 바로 그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오늘날 현대인이 즐기는 대부분의 아웃도어 활동과 스포츠 레저 활동은 두 다리를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직립보행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
네 발로 걷던 인류가 갑자기 일어선 이유는 뭘까?
부족한 먹이를 찾아서 땅으로 내려왔으니 나무 위의 열매를 따려면 두 다리로 설 수 밖에 없었고, 나무와 나무 사이는 너무 멀어져서 그네처럼 팔로 이동할 수도 없었기에 걸어서 옮겨가야 했다. 너클보행(knuckle walking)을 하며 뒤뚱거리는 다른 친척들에 비해 두 다리로만 걸었을 때 더 빠르게 먹이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두 다리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두 다리만으로 걸을 때 또 다른 장점은 풀숲에서 천적을 더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식자들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면 먼저 그들을 발견해야 했다.
루시 화석을 재구성한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모형.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의 골반 뼈도 더욱 정교하게 진화했다. 골반 뼈는 고관절과 연결되어 두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며, 머리와 연결된 척추를 받쳐주어 체중을 지탱한다. 또한 내장과, 여성의 경우 자궁까지 보호하고 있다. 골반 뼈야말로 가장 인류다운 뼈라고 할 수 있다.
꼿꼿하게 서서 걷거나 뛰었을 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척추는 S자 모양으로 진화했고, 지표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발바닥은 아치 모양으로 변했다. 마침내 인류는 두 다리만으로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두 다리만으로 달릴 수 있다니! 150cm, 현대에 와서는 200cm까지 되는 키 큰 생명체가 수직으로 곧게 서서 두 다리만으로 걷거나 달리는 모습은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의 걸음걸이와 비교하면 기이하게 보일 정도다.
미래의 인류가 어느 날 생존을 위해 태양계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듯 그들도 공간의 전부라고 믿었던 숲을 떠나 사바나로 나가거나 건너편 숲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오래, 멀리 걸을 수 있도록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은 미래의 인류가 마치 공간을 접어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SF 소설 속의 초광속 워프(Warp) 기술이나 다른 항성계로 연결되어 있는 웜홀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몇 달 째 극심한 가뭄으로 숲이 말라가던 12만 년 전의 어느 오후, 막 성년이 된 열여섯 살의 부사라는 동료 무리 2명과 함께 동아프리카의 메마른 초원을 헤치고 두 다리로 걸어 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숲마저도 오랜 가뭄으로 인해 사바나 지대로 바뀌고 있었다. 부사라는 무리 중에서 호기심은 가장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생경한 세상과 마주쳐야 하는 두려움에 잔뜩 긴장해 있었다.
남다른 용맹함과 지혜로움으로 무리 중에서 으뜸이었던 부사라에게도 하이에나의 추격을 따돌리고 검치호랑이의 공격을 피해 초원 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대륙으로 걸어 나가는 일은 일생일대의 대단한 모험이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럼에도 부사라 무리는 종 전체의 운명을 건 역사적인 대장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종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고, 유일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환경의 변화가 강요한 길이었다.
부사라가 두 다리로 언덕에 서서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지 않았다면 현생 인류는 다른 친척 무리들처럼 이미 수만 년 전에 멸종되어 아프리카의 황량한 사막 모래 속에 화석으로만 남아 있거나, 무척 운이 좋았다면 여전히 작은 숲이나 초원지대에서 소규모로 무리 지어 하이에나를 피하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빠져나온 인류 최초의 장거리 보행자인 부사라에게도 우리는 무한한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 전략은 네안데르탈인과 달랐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 전략은 매우 단순하게도 ‘멀리 걷기’와 ‘오래 달리기’ 전략이었다. 말하자면 스루 하이킹(Thru-Hiking) 전략인 셈이다. 단순했지만 멀리 걷기, 오래 달리기 전략은 오랫동안 생태계 약자로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밖에 없었던 생존의 고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과정은 비록 비루했으나 최적화된 에너지 효율성을 가진 멀리 걷기, 오래 달리기 전략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근육량이 많았던 네안데르탈인은 하루에 4,000kcal 이상의 열량이 필요했다.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가서 일정한 거리에서 창을 던져 사냥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주로 근접 사냥을 하였다. 근접 사냥은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법보다 훨씬 위험했다. 근접 사냥으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은 많은 부상을 입었고 더러는 목숨을 잃어야 했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는 골절상을 입거나 짐승에게 물린 흔적이 유독 많이 발견된다. 하루 4000㎉ 이상의 열량을 대부분 육식으로 섭취해야 했던 네안데르탈인은 하루 종일 사냥을 해야 했을지 모른다.
이에 비해 효율적인 직립보행으로 필요한 열량도 훨씬 적었으며, 나무에서 내려온 후 점점 털이 없어져 피부를 통해 땀을 내보내며 효과적으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그 어떤 경쟁자보다도 신체 기관의 열 관리 능력이 뛰어났고, 그래서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었다. 단거리 달리기 능력만 보자면 하이에나와 검치호랑이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오래 달리기 선수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두 다리로 뛸 수 있게 진화했다.
이처럼 더 멀리 걷고,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어떤 동물이나 친척 무리들보다 더욱 진취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친척 무리들이 두려움에 떨며 숲과 초원을 벗어나지 못할 때 과감하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한 지역에서 출발한 단일종이 지구의 모든 대륙으로 진출해 현재까지 멸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체는 지구의 46억 년 역사를 통틀어 우리 인류뿐이다. 호기심이 많았던 부사라가 어느 날 언덕 위에 올라서서 자유로운 손을 뻗어 저 멀리 미지의 세상을 가리킬 수 있었던 것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다리로 걷는 인류의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 이것이 훗날 우리들 아웃도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To be continue…
2021년 3월, '인사이드 아웃도어'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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