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배낭의 진짜 가치는 매장에서 들어보는 첫인상이 아니라, 실제 트레일 위에서 며칠이고 함께 부딪히며 드러납니다. 5월의 오티티 진안 이후 다양한 하이킹에서 그리고 유럽 알프스의 고전 루트, 투르 드 몽블랑(TMB, Tour du Mont Blanc)의 긴 여정에서 파고웍스(Paagoworks) 젠(ZENN) 시리즈와 함께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ZENN은 "단순히 가볍다"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배낭이었습니다. 경량 하이킹의 맥락 안에서 안정감과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계와 성격이 분명한 배낭이기도 했습니다.
트레일 시작 무게는 배낭 포함 10kg 정도였고, 잘 만들어진 힙 벨트에서 하중 분산을 하였지만 어깨에 다소 무리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음식의 양이 줄어들면서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비로소 편안해졌는데, 역시 다른 경량 배낭들처럼 8kg 이하의 무게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더 많은 하중을 운반한다면 스테이가 적용된 ZENN 45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ZENN 25
동행한 효정 에디터의 경우 젠 25리터를 사용하였고, 더 가벼운 무게였지만 트레일 초기에는 어깨 통증에 힘들어 했고 트레일 후반으로 갈수록 편안함을 되찾았습니다. 더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어깨 통증을 호소한 것은 힙 벨트의 차이입니다. ZENN 25의 경우 스테빌라이저 목적의 간단한 웨빙 벨트로 되어 있고, ZENN 35와 45는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는 힙 벨트(힙 하네스)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ZENN 35 & 45에 적용된 사이드 지퍼
ZENN 25와 35는 대부분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두 가지 차이점이 더 있습니다. ZENN 35는 사이드 지퍼가 적용(ZENN 45 동일)되어 상단뿐만 아니라 옆쪽에서도 메인 팩의 수납 장비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클로저가 다릅니다.
ZENN 35 & 45에 적용된 롤탑 클로저
ZENN 25에 적용된 튜브탑 클로저
ZENN 35는 롤탑(ZENN 45 동일) 방식의 클로저가 적용되어 있고, ZENN 25의 경우 튜브탑(Tube Top) 스타일의 클로저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역시 튜브탑 스타일의 드로우스트링 클로저는 매우 빠르게 여닫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내용물은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롤탑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배낭은 완전한 방수가 아닙니다. 몽블랑의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우리는 배낭 내부에 비닐 소재의 라이너를 사용하였습니다.
한 가지 팁으로 대부분의 백패킹 배낭은 원단이 방수라고 할지라도 봉재선이 방수 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내릴 경우에는 배낭 내부는 젖게 됩니다. 때문에 방수 라이너나 배낭 방수 커버를 사용해야 합니다. 방수 커버는 어깨와 등으로 타고 내려오는 비까지 막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라이너를 더 선호하고 권장합니다.
Yamatomichi, CAYL 배낭 등을 구매하면 비닐 라이너에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라이너를 활용하면 좋고, 없다면 다이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김장용 비닐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사이즈는 다양하기 때문에 배낭 용량에 맞게 구매하면 됩니다.
숄더 하네스와 일체화된 포켓은 매우 편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스트레치 메쉬 소재가 적용되어 볼륨감 있는 장비들도 수납하기 좋았고, 별도로 부착하는 포켓들과 달리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없습니다.
흔히들 물통 파우치를 어깨 하네스에 부착하여 사용하면서 수분 섭취의 편리함을 느낍니다만, ZENN 배낭에는 이러한 파우치를 부착하기 어려운 형태입니다. 하지만 배낭의 사이드 포켓은 배낭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접근하기 쉬운 형태이고 단 한 번도 불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이드 포켓은 신축성이 뛰어나고 탄성 스트링으로 단단히 고정할 수 있습니다. 500ml 물병 2개를 안정적으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상단 포켓은 빠르게 사용해야 하는 작은 장비를 수납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주로 구급키트, 헤드램프를 휴대하였고, 배낭을 내려놓고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꺼내어 사용하였습니다.
지퍼 달린 전면 포켓은 트레일 초기에는 바람막이, 레인 쉘, 레인 스커트 등 여러 장비를 수납하였는데, 텐트가 젖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텐트를 통째로 넣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볼륨은 대략 5리터로 추정되었는데, 실제 사양에도 5리터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젖은 장비를 분리하여 수납할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사이드 스트랩이나 상단 스트랩을 활용하여 외부에 추가 장비를 수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사용하진 않았지만 배낭 하단에 스트링을 연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도 외부 수납의 추가 옵션입니다.
ZENN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조절 가능한 하네스입니다. 등판의 독특한 디자인은 어깨 하네스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안정적이고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했습니다. 벨크로 방식으로 등판 길이를 ZENN 25의 경우 38cm에서 48cm까지, ZENN 35의 경우 44-54cm까지 조절 가능합니다. 남녀 구분 없이 사용자의 체형에 따라 개인화할 수 있는 것은 이 배낭의 뚜렷한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일부 배낭들은 상단 스테빌라이저 스트랩을 당길수록 답답한 느낌을 주는 반면, 이 배낭의 경우 어깨 하네스의 지점이 낮아 스테빌라이저를 가까이 당겨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였습니다. 넓은 어깨 하네스는 안정성을 더하고 직접적인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네스와 전면 포켓은 분리해 소형 배낭으로 재조합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서는 이것을 ZENN System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악 문화에서는 베이스 캠프를 두고 정상을 다녀오는 이른바 어택 스타일이 거의 없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옵션입니다.
TMB 이후 사마야(Samaya) 본사 방문차 샤모니 인근의 안시(Annecy)라는 도시를 방문하였는데, 소형 배낭으로 변신하여 라이딩에 활용하였고, 이 배낭의 다재다능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더 다양한 모듈형 제품이 출시된다고 하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분리되는 하네스는 땀으로 인하여 오염되는 주요 부위와 동일하기 때문에 세탁이 편리하고, 손상된 경우에도 모듈화된 시스템 덕분에 교체가 용이합니다.
메인 원단은 UHMWPE으로 제작된 210D Extreema Grid 나일론입니다. 원단은 얇지 않으며 무게 대비 강해서 험하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구성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바닥은 뛰어난 인열 강도의 ECOPAK으로 보강되어 있습니다. 원단뿐만 아니라 빌드 퀄리티 또한 흠잡을 곳은 없었고, 여전히 모든 구성 요소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파고웍스의 젠 시리즈는 단순히 새로운 경량 배낭이 아니라, 경량화된 하이킹 경험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지탱해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보여줬습니다.
ZENN 35는 분명히 가벼운 무게와 심플한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체형 맞춤을 가능하게 하는 조절식 하네스, 모듈형으로 변신 가능한 젠 시스템, 그리고 실제 트레일에서 체감되는 수납의 편리함이 더해져 단순히 경량 배낭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즉, 이 배낭은 ‘경량성’과 ‘안정감’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이며,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TMB는 매일 20km 이상, 1000m~2000m를 오르내리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ZENN 35는 무게가 8kg 이하일 때는 놀라울 만큼 편안했지만, 10kg에 가까워질 경우 어깨로 전달되는 부담이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하이킹 스타일과 짐 총량에 따라 적합 여부가 갈린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10kg 이상의 장비를 안정적으로 운반하고 싶다면, 스테이가 내장된 ZENN 45가 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ZENN 시리즈는 같은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각 모델이 담당하는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배낭이 그렇듯 ZENN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아쉬운 점과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경량 배낭”이라는 카테고리를 이해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브랜드가 명확하게 지향점을 두고 배낭을 설계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젠 배낭은 ‘다재다능함’과 ‘경량 하이킹’의 교차점에 놓인 배낭입니다. 단순히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초경량 배낭(HMG, Yamatomichi, Liteway 등)들과 비교하면, 착용감과 안정성에서 훨씬 여유가 있고, 전통적인 백패킹 배낭(Osprey, Deuter 등)과 비교하면 불필요한 기능을 덜어낸 대신 훨씬 가볍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짐을 철저히 관리하며 8kg 이하로 운용할 수 있는 하이커에게는 이상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혹시 몰라서”라는 이유로 장비를 더 챙기는 하이커라면 ZENN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국 ZENN은 배낭 그 자체보다도 하이킹 철학을 드러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내가 얼마나 짐을 줄일 수 있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짐을 다룰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ZENN은 누구보다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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