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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만든 과거 인류, 인류가 만드는 미래 지구

근사하면서 윤리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주는 ‘지속가능성’은 최근 마케팅 담당자가 가장 선호하는 단어의 하나인 듯하다. 나쁘지 않다. 그린마케팅 유행에 편승해 갑작스럽게 환경주의로 개종했다고 해도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지속가능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럼 도대체 지속가능성은 무엇이고, 지속가능한 아웃도어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하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게 세상 이치인데 지속가능은 어떻게 가능한가? 

 

아웃도어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환경 문제이다. 아웃도어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가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환경이 미래에도 지속가능해야 아웃도어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아웃도어를 이야기하려면 가장 먼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아웃도어 동호인들이 환경보호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퇴근박’이라는 게 있다. 퇴근하자마자 가까운 야영장으로 달려가 캠핑을 즐기거나, 산으로 백패킹을 다녀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업무에 시달리는 평일 퇴근박은 직장인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멋진 취미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산과 숲이 줄어들고 토양이 황폐해진다면 어느 날 우리는 실내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 연습을 하듯이 실내 스크린 하이킹 시설에서 걷고, 어린이 놀이방처럼 생긴 곳에서 소꿉놀이하듯 캠핑을 즐겨야 할지 모른다. 그곳에는 강력한 모터로 작동하는 대형 공기청정기가 있을 것이고, VR 기술로 그럴 듯하게 재현한 개울 옆에 나무가 서있을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재앙

2006년 나는 개인적인 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3개월 일정으로 시드니에 머물 예정이었는데 백패킹 취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텐트를 수화물에 포함시켰다.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문제될 게 전혀 없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시드니 공항에서 난처한 일을 당했다. 출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 서있던 나를 공항 직원이 따로 불러내서 모든 짐을 다 꺼내 놓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마치 마약 소지자처럼 여기는 직원의 고압적인 태도가 불쾌했지만 나는 내 배낭에 든 물건을 모두 꺼내서 검사대 위에 펼쳐 보였다. 문제될 게 뭐가 있냐는, 약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텐트 팩이었다. 직원은 텐트 주머니에서 텐트 팩을 꺼내 들면서 왜 당신은 이것을 신고하지 않고 반입하려고 했는지를 따져 물었다. 어리둥절한 나는 날카로운 금속 텐트 팩을 도검류로 분류하는 줄 알았다. 그가 보기에는 텐트 펙이 그저 날카로운 쇠꼬챙이처럼 보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쇠꼬챙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던’ 텐트 팩이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가져간 텐트 팩에는 아주 약간의 흙이 묻어 있었고, 공항 직원은 그 흙에 당신 나라의 식물 씨앗이나 박테리아 등이 묻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지적에 수긍했지만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텐트 팩은 압수되었고, 장시간 훈계를 들은 후에야 겨우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에게 그 공항 직원은 한동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외래종 반입으로 겪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값비싼 경험을 알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다.

 

19세기 사냥을 좋아하던 영국의 귀족들이 여우와 토끼를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여왔다. 사냥 취미를 위해 들여온 영국의 여우와 토끼는 얼마 가지 않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계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는데, 여우는 진화적인 경험이 전혀 없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종 포유류와 조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고, 번식력이 대단했던 야생 토끼는 토종 초식동물들과의 먹이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더구나 크게 늘어난 토끼의 개체 수는 양과 소의 사료로 사용하던 식물을 급속도로 먹어치우면서 목축 산업에도 큰 손실을 가져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풀이 사라진 토양은 비를 머금지 못해 점점 황폐해지면서 생태계에 일대 교란이 일어났고, 오스트레일리아 국토는 전대미문의 환경 재앙을 맞게 되었다. 징후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고 메마르면서 뿌리가 점점 드러나는 나무들, 점차 개체수가 줄기 시작한 토착 생물들, 그리고 마침내 황폐화된 목초지와 목장을 버리고 하나둘 떠나는 인간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뒤늦게 재앙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에 나섰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삼각편대

징후가 너무 미약하여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인간 활동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세계 기온이 ‘평균적’으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매년마다 세계 기온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평균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며, 또 상승의 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구 환경과 거기에 익숙한 인류의 적응력,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위기관리 능력은 세계 기온이 평균적으로 1도만 올라가도 벌이질 대재앙을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약한 징후를 사전에 인지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인 사례를 더 제시하지 않아도 본래 주제에 비추어 인간 활동에 따른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화제를 다시 지속가능성으로 돌려보자. 지속가능한 아웃도어는 어떻게 가능한가? 지속가능한 아웃도어는 아웃도어 활동과 관련한 세 개의 주체, 즉 아웃도어 동호인, 아웃도어 관련 기업, 그리고 환경과 생태 등의 공공자원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문화와 제도 정비들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가능하다.

 

아웃도어 동호인은 실제 아웃도어 문화를 만들고 아웃도어를 향유하는 사람들이자 아웃도어 비즈니스의 고객이기도 하다. 아웃도어 관련 기업은 제한된 지구 자원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잠재적 고객들에게 자연 속으로 들어가라고 독려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때 더 큰 이윤을 남긴다. 따라서 아웃도어 기업은 마땅히 지속가능성에 대해 여느 기업보다도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자연 환경과 관련한 공공자원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은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실행해야하는 또 하나의 주체이다.

 

아웃도어 관련 기업은 공공자원인 자연 환경의 활용에 기반한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자본 중심의 단기적 이익 추구 전략보다 지속가능한 아웃도어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결코 자본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 공헌 활동을 벌여나가는 것은 마치 SOC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단단한 비즈니스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사람과 환경과 문화가 없는데 아웃도어 비즈니스가 잘되길 바라는 것은 파종도 하지 않고 수확하려는 욕심이다.

 

이른바 ‘그린마케팅’은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창출하여 결국에는 기업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이것은 이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서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장려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업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기업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포장재를 포함해 폐기된 상품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전체 프로세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린마케팅의 한계는 단지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구축을 통한 '매출 확대’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다. 친환경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결국 시민이 만들어간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윤을 축소시키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기업 활동의 결과로 환경적 재앙을 일으켰다고 해도 그 처리는 사회 전체 부담으로 떠넘기고 기업은 파산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사람들처럼 어릴 적부터 공동체 의식을 교육받거나 경험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성장하면서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인성’이 기업 활동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각성시키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은 시민, 즉 소비자들이다. 

 

시민의 각성이 기업의 경영 정책이나 제품의 윤리성 강화를 이끌어내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2015년을 전후로 우모 제품을 만드는 아웃도어 기업들이 RDS인증을 받은 윤리적인 우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RDS 우모를 사용하면 생산원가가 상승하므로 주주나 이사회는 자발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당시 많은 동물복지단체들이 동물학대 사실을 널리 공개하고, 소비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기업은 좀 더 비싼 우모를 사용하여도 그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결과이다. 소비자가 기업을 ‘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앞서 현대 사회의 소비는 신념 표현의 한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상품의 구매, 혹은 불매는 소비자의 권한이다. 더 나아가 마케팅에 대한 반응도 신념 표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칭찬받아 마땅한 기업의 이벤트에는, 비록 그 리워드가 소소하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참가하며, 진정성이 의심되는 데다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면 그 리워드가 아무리 크더라도 배척하는 것으로 신념을 표현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신념 표현은 기업으로 하여금 점점 얕은꾀로 소비자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신념 표현이며,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리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 조직과 입법부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을 입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것도 결국은 시민이다. 개발 이익을 중심으로 연합한 집단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국 몇몇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우리는 황폐한 자연환경을 돌려받는다. 정부 조직과 입법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투표와 사회 참여이며, 시민이자 유권자인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리다.

 

END.

 

이상으로 인사이드 아웃도어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봄 "인사이드 아웃도어"의 전체가 공개됩니다!

Publisher

R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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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도어' 시리즈 보기

  • 1. 인사이드 아웃도어 01 : 아웃도어의 기원
  • 2. 인사이드 아웃도어 02 : 인사이드 아웃도어
  • 3. 인사이드 아웃도어 03 : BPL
  • 4. 인사이드 아웃도어 04 : 아웃도어 브랜드 흥망성쇠
  • 5. 인사이드 아웃도어 05 : 장비 개발
  • 6. 인사이드 아웃도어 06 : 지속가능한 아웃도어
  • 7. 인사이드 아웃도어 에필로그 : 라제건, DAC로 세계 텐트 시장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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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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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기다리면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책으로 나오는거 같은데 너무 기대되고 기다려져요!
    2021.03.10 1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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