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괌정부관광청의 초청으로 괌을 찾았다. 이번 여행은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다. 괌의 트레일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이 섬에서는 어떤 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야영하며, 걷고 머무는 멀티데이 하이킹을 이어갈 수 있을까.
베러위켄드의 괌 트레킹 시리즈는 세 개의 길을 걷는다. 괌트레킹클럽(Guam Trekking Club)의 최승환 대장과 걸은 아나오 클리프에서는 괌에서의 멀티데이하이킹의 가능성을, 자원봉사 리더들을 중심으로 매주 공개 하이킹을 이어가는 괌의 비영리 하이킹 단체인 부니스톰퍼(Guam Boonie Stompers)와 동행한 아산 인베이전 트레일에서는 지역 하이킹 문화의 방식과 의미를 살펴본다. 그리고 관정부관광청(Guam Visitors Bureau) 과 함께한 파갓(Pågat) 케이브에서는 괌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에 그치지 않고, 걷고 있는 길 아래 자연과 오래된 삶의 흔적이 한 트레일 안에서 어떻게 겹쳐지는지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관광지로 익숙한 괌을, 걷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출발 전, 나는 괌정부관광청의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괌의 합법적인 야영 제도와 시설 운영 방식, 이용 절차를 직접 살펴보고 오겠다는 명목으로 편집장님의 승인을 받았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때깔 좋은 취재 명분 아래 마트에서 장도 보고 밤에는 캠핑하며 놀다 올 마음이 더 컸다. 아마 다섯 배쯤.
반나절 정도 자료를 찾아본 끝에,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공공 야영 시설은 괌항만청(Port Authority of Guam)이 운영하는 곳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항만청으로부터 끝내 회신을 받지 못해 합법적인 야영 절차와 운영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괌항만청에서 허가를 받아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하는 해변은 패밀리 비치(Family Beach)와 포트 비치(Port Beach), 두 곳이다. 둘의 차이점은 패밀리 비치는 개방형 해변 공간으로 전기, 수도 시설은 없고 몸을 헹굴 수 있는 시설 정도만 제공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공공 해변의 그것과 비슷하고, 포트 비치는 출입문으로 통제되는 사적 이용 공간에 가깝다고 한다. 이렇게 BEACH PERMITS 페이지에서 월별 예약 현황을 조회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양식을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면 되는 시스템. 여기까지는 꽤나 창대했다. 웹사이트에는 달력도, 신청서도, 절차도 있었다. 다만 항만청의 회신을 받지 못하면서 나의 야영 계획은 그보다 훨씬 미약한 결말을 맞았다.
이후 현지 교민들에게 들은 바로는 괌의 행정은 예상보다 느리고,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으며, 한 번의 문의만으로는 정확한 답을 얻기 어려워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공식 일정이었던 파갓(Pågat) 케이브의 현지 가이드이자 한인산악회인 괌트레킹클럽(Guam Trekking Club)을 이끌고 있는 최승환 대장에게 포트 비치 야영 허가가 오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그곳은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대신 추천할 만한 트레일의 어딘가에서 하루 야영을 함께해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가 제안한 곳이 아나오 클리프였다. 다음 날, 각자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만날 것은 약속하고 헤어졌다.

18일 토요일 오후, 최승환 대장과 함께 타무닝(Tamuning)에 있는 해피마트에 들렀다. 저녁으로 먹을 삼겹살과 우삼겹, 꽃등심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한국에서의 가격을 떠올리면 고기가 꽤 저렴하게 느껴졌다.
투몬(Tumon) 인근의 K마트가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카트 가득 생필품과 기념품을 담는 거대한 종합매장이라면, 해피마트는 분위기가 훨씬 작고 생활에 가까웠다.
최승환 대장의 차를 타고 괌 북부 지고(Yigo)의 아나오 클리프 트레일헤드(Anao Cliffs Trailhead)로 향했다. 도로 위 차량들은 전반적으로 느긋하게 움직였다. 도로 전체가 딱히 서두르지 않는 흐름이 낯설어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면 아나오 클리프 트레일헤드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난다. 괌에서의 흥미로운 부분은 사유지에 대한 경계가 분명하여 한국 시골에서의 임도, 이면도로 주차와는 달리 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치안에 대한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번 괌에서의 일정은 45리터 배낭과 19리터 데이팩만으로 움직였다. 트레일헤드에서 야영·운행 장비와 촬영 소품을 데이팩으로 옮겼다. 하루 야영에는 19리터면 충분했다.
트레일헤드에서는 물고기와 코코넛크랩을 잡고 사냥에 나설 채비를 하던 일행을 만났다. 최승환 대장은 이런 수렵이 현지인의 생업 중 하나라며, 특히 코코넛크랩은 놀랄 만큼 비싸게 거래된다고 했다. 이들은 친척 집 앞에 차를 세우며 다음에도 주차해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이날의 트레일 엔젤 쉐인은 괌에 거주하는 퇴역군인이자, 최승환 대장과 함께 괌트레킹클럽에서 활동하는 오랜 친구다. 그는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몰고 인근의 집으로 돌아가며 다음 날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올 것을 약속했다.


이곳이 아나오 클리프의 트레일헤드다. 표지판도 뚜렷한 길도 없어, 안내가 없다면 입구라고 알아보기 어렵다. 몇 군데 찾아가 본 괌의 트레일헤드의 상당수는 이런 식이었다. 일부러 찾아가 본 람람산(Mount Lam Lam) 트레일헤드에서도 뚜렷한 안내 시설은 발견하지 못했다.
트레일헤드 부근은 평탄한 석회암 고원이 이어진다. 괌의 트레일은 섬 안쪽의 고지대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는 형태가 많다. 아나오 포인트로 향하는 길도 시작은 내리막이다. 덕분에 첫걸음은 비교적 가볍지만, 그렇다고 길 자체가 편한 것은 아니다. 거리는 짧아 보여도 한 걸음씩 발을 골라 디뎌야 하기에, 이상하리만큼 걷는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또한 높은 기온과 습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괌의 하이킹에서는 긴바지를 권한다. 더위보다 먼저 대비해야 할 것은 길을 차지한 정글의 거친 식생이기 때문이다. *모기기피제는 필수
올해 괌은 엘니뇨로 전환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최승환 대장은 강한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숲은 꽤 강한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나무가 쓰러지고 식생이 걷히는 일은 분명한 상처지만, 그 덕분에 숲에 묻혀 있던 길이 다시 드러나는 뜻밖의 행운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현지 예보를 수시로 확인하는 최승환 대장을 보며 현지인이 체감하고 있는 엘니뇨 전환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도 부러진 거대한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자연이 숲과 길을 보호하려고 세워둔 장애물처럼, 괌의 숲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길이 완전히 막힌 경우에는 쓰러진 나무를 치우기보다, 사람들이 오가며 그 곁으로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괌의 트레일은 정비된 길을 따라 걷는 ‘패스(path)’라기보다, 목적지를 향해 지형을 읽으며 이어가는 ‘루트(route)’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날 다녀온 파갓 케이브처럼 방문자가 많아 발자국이 비교적 뚜렷한 곳도 있지만, 이곳 지고숲에서는 태풍과 빠르게 자라는 식생 탓에 길이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다시 생겨나는 곳이기 때문에 ‘패스(path)’는 언제든 희미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단박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이날 오전에 다녀온 부니 스톰퍼스(Guam Boonie Strompers)의 하이킹 안내문 역시 이를 숨기지 않는다. “Guam’s trails are not developed.” 괌의 트레일은 개발되거나 정비된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짧은 문장은 우리가 숲에서 마주한 길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트레일헤드의 초입을 지나 서서히 고원 내부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지고숲의 울창한 열대림이 시작된다. 공중뿌리가 여러 개의 줄기처럼 땅으로 내려오는 괌의 반얀트리, 누누나무와 보기엔 거칠지만 다양한 일상소품으로 변신하는 판다누스의 잎이 숲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석회암으로 가득한 이 고원 내부의 기반은 흙과 나무들에 가려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딛는 단순한 땅처럼 보였다.

괌의 트레일은 밀림 같은 숲을 필연적으로 지난다. 그런데도 묘하게 길은 늘 끊기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다. 문제는 같은 곳에서 길을 잘못 든 사람들이 반복해서 만든 ‘가짜 길’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누가봐도 길인 것이다!) 다만 괌에서는 정해진 길보다 목적지가 먼저다. 어디로 걸을 것인가보다 어디에 도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 보였다. 그것이 괌 트레일의 특징인 ‘루트(route)’의 의미이다.
괌의 숲에는 사람을 위협할 만한 대형 맹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야생돼지와 사슴이 지나간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허가와 규정 아래 총기를 이용한 사냥도 이루어져, 산행 중 멀리서 총성을 듣기도 했다. 길이 분명하지 않은 데다 사냥 활동까지 겹치는 숲인 만큼, 전문 가이드나 현지 사정에 밝은 이와 동행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최 대장이 '시큼이달큼이’라고 이름 지은 열매, 정식 명칭은 핑거솝(finger sop)이라고 한다. 익으면 붉거나 보랏빛을 띤다고 하는데, 우리가 만난 것은 아직 어린 초록색 열매였다.
한입 베어 물면 혀가 아릴 만큼 강한 신맛이 먼저 밀려오고, 잠시 뒤 은근한 단맛이 따라온다. 그 상태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신기하게도 울릉도에서 맛 보았던 고로쇠 수액 같은 달큰함이 입안에 남았다.
둘째 날, 트레일헤드로 돌아오는 길에는 식수가 부족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이 핑거솝을 다시 만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괌의 정글을 걸으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숲은 짙고, 깊고, 울창한데,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새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함께 동행한 Debbie는 그 이유로 갈색나무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2차 세계 대전 무렵 괌에 유입된 이 뱀은 새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대부분의 토착 산림조류가 야생에서 사라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Debbie는 해변을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를 발견할 때마다 유난히 반가워했다. 그제야 그 반가움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식생이 만든 작은 터널을 빠져나오듯 갑자기 숲이 열리고, 그 너머로 드디어 바다가 반가운 모습을 드러낸다. 발아래로는 아나오 클리프의 거대한 절벽선이 내려다보였다.

절벽선에 들어서자 지형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일반적인 산악지대의 비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제주 곶자왈의 너덜너덜한 길을 30도쯤 기울여 놓은 모습에 가까웠다. 다만 바위는 훨씬 더 거칠고 표면은 날카로웠다. 그 사이사이에는 얕은 흙과 축축한 이끼가 끼어 있어, 한 번 균형을 잃으면 크게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괌 트레킹에서 긴바지를 적극 권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급한 카르스트 사면을 치고 내려가면 절벽 아래의 해안림과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다시 만나게 된다. 고원에서 절벽선으로, 다시 절벽 아래로 내려서는 과정은 마치 거대한 계단을 두 번 딛고 내려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때까지만해도 뭔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이 곳 부터는 숲 바닥의 풍경도 달라졌다. 떨어진 가지와 마른 야자잎, 정체를 알 수 없는 코코넛 같은 열매를 비롯한 유기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절벽 아래로 내려온 뒤부터는 식생의 크기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마 해안 기후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첫 번째 계단이라 부를 만한 고원 내부의 열대 석회암림에서는 판다누스가 비교적 나무다운 형태로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판다누스와 소철류는 사람이 미니어처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큼직했다. 마치 거대한 테라리움 안에 있는 느낌으로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잎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커다란 잎들이 길 안쪽까지 밀고 들어온 탓인지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길의 흔적 자체는 분명했지만, 앞을 가린 잎과 줄기 사이에서 방향을 확인하느라 중간중간 걸음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반복됐다. 역시 걷는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지고숲을 지나 아래로 내려서면 아나오 해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일대의 하늘은 괌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지나는 길이기도 했다. 숲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를 비교적 낮게 통과하는 민항기와 종종 마주친다. 고요한 숲과 바다 위로 갑작스럽게 비행기의 굉음이 겹쳐지는 풍경은 꽤 낯설고 인상적이었다.

아나오 해변에 도착해 아나오 포인트로 가는 길은 아주 성가신 석회암 돌기 지대로 이어졌다. 이 구간에 들어서자 안 그래도 느릴 수 밖에 없던 속도가 급격하게 더 느려졌다. 멀리서 볼 때는 평평한 지형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 키만 한 석회암 덩어리들이 끊임없이 솟았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돌기 사이로 몸을 낮춰 지나가거나 바위를 타고 넘는 일이 계속됐다. 지도 위에서는 짧은 거리였지만, 실제로는 한 걸음마다 다음 발을 어디에 놓을지 먼저 살펴야 하는 구간이었다.

급격하게 솟은 카르스트 사면은 구간에 따라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길게 이어진 석회암 절벽은 마치 거대한 병풍을 세워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절벽선 너머에는 미군의 B-52 폭격기 등이 주둔하고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바다와 절벽, 울창한 숲이 겹겹이 둘러싼 지형을 바라보고 있자니, 섬의 한쪽이 거대한 자연 요새처럼 느껴졌다.

아나오 포인트로 접근할 때 가장 성가셨던 구간 중 하나였다. 낮게 퍼져 자라는 관목이 뾰족하게 솟은 석회암 지대를 빈틈없이 뒤덮고 있었다. 겉으로는 초록빛 바닥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바위 사이의 깊은 균열과 불규칙한 틈이 숨어 있었다.
어디를 밟느냐에 따라 발밑의 가지가 갑자기 부서지며 다리가 틈으로 빠지기도 했다. 한 걸음 내딛기 전마다 관목 아래의 지형을 가늠해야 했고, 그 때문에 걷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해안단구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해가 어느새 절벽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아나오 포인트에 도착해야 했다. 느려진 걸음을 다시 다잡고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간중간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해변 풍경은 번번이 걸음을 늦추었다.

수영할 줄 아는 게, 스위밍크랩(swimming crab)이 집게발을 치켜들며 벌이는 작은 도발도 잠시 구경한다.

아나오 포인트로 접근하는 길들은 솟아오른 산호성 석회암과 해안 석회암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탄한 돌길처럼 보이지만, 막상 발을 들이면 뾰족하게 솟은 석회암 돌기들 때문에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다.
이번에 신고 간 ‘뉴발란스 이에로’의 어퍼 메쉬가 돌기에 걸려 ‘죽’ 하고 찢어진 것도 바로 이 구간이었다. 날카로운 바위 표면은 밑창에도 그대로 흔적을 남겼고, 걸음을 이어갈수록 아웃솔이 조금씩 뜯겨 나갔다.
Debbie의 튼튼한 신발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해안을 낮게 따라 조금씩 올라서자 마침내 아나오 포인트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멈춰도 충분할 것 같은 장관이었다. 길은 다시 포인트의 등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내 눈에는 거대한 악어의 우둘투둘한 등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등을 타고 꼬리 방향으로 이동해 끝자락의 동굴로 향했다.
이곳은 산길의 끝이라기보다, 이어지던 육지가 태평양의 파도 앞에서 갑자기 잘려 나간 장소에 가까웠다.

최 대장은 이 카르스트 사면 일대를 ‘호치민’이라고 불렀다. 이곳을 여러 차례 오간 두 사람 조차 이날 처음 보는 동굴을 발견했다며 한동안 흥미롭게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괌은 변화무쌍한 곳인 것이었다.

드디어 아나오 포인트를 넘기 시작한다. 거의 사족 보행으로 아나오 포인트의 등줄기로 올라서자, 진입부에서 보았던 뾰족한 융기 석회암들이 한층 더 거대한 형태로 솟아 있었다. 날카로운 돌기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어, 자칫 균형을 잃고 구르기라도 하면 석회암 가시에 그대로 꿰일 것만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혼자였다면, 어쩌면 이쯤에서 발길을 돌렸을지도.

최승환 대장이 아나오 포인트의 위험한 구간에 직접 밧줄을 매어두었다. 덕분에 날카로운 석회암 사이를 거의 기다시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이긴 했지만 안전하게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악어의 등처럼 보였던 아나오 포인트는 옆에서 바라보니 더욱 악어를 닮아 있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낮은 동굴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이날은 암석 표면의 습기가 평소보다 많아 미끄러울 수 있다고 판단해 진입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가자고 했어도 안 갔을 것이다.

그렇게 드디어! 마침내! 아나오 포인트에 도착했다. 무겁지만 튼튼한 나의 오래된 베드락 샌들로 갈아신고, 잠시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가장 날 선 상태의 석회암 지대 걷느라 고생했다. 내 발. 그제서야 태평양이 제대로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낭만도 잠시.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괌의 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바다를 등지고 시작된 석양은 순식간에 멀리 태평양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석양과 맞 바꾸듯이 찾아온 아나오 포인트에서의 밤은 최승환 대장이 들려주는 별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디서도 듣기 쉽지 않은 많은 별 이야기를 들려 주셨으나 “아~ 밝고 선명한 적도의 아름다운 별’ 정도로만 이해한 나를 몹시 꾸짖어 본다. 낮 동안 거친 석회암 지대를 안내하던 사람이 밤이 되자 갑자기 머리 위의 별과 괌의 밤하늘을 이야기해주는 별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최승환 대장은 현지에서 ‘최대장의 별빛투어’라는 이름으로 별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기회가 된다면 관광객으로 오리라)

그렇게 괌의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밤이 지나고, 아나오 포인트에도 아침 여명이 드리웠다. 다행히 모기는 없었고, 잠자리 여기저기에 기어다니고 있던 코코넛크랩들로부터 내 손가락도 무사했다.

야영지는 비가 어느 정도 내려도 몸을 피할 수 있는 동굴 입구였다. 안쪽이 완전히 막힌 형태는 아니었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 있어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겨울에는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이 이 통로를 지나 동굴 안으로 시원한 바람길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달라져 있었고, 기대했던 만큼의 바람은 불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최승환 대장이 이야기했던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 ‘샹그릴라’는 분명 그곳에 있었다. 거친 길의 끝에서 만난 동굴과 밤바다, 그리고 별빛 아래의 고요한 시간. 완벽하게 쾌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밤이었다.

이번 여행에는 파고웍스(PAAGO WORKS)의 젠 돔 쉘터(ZEN DOME SHELTER)를 가져왔다. 지난해 존 뮤어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걷는 내내 나를 지켜준 소중한 녀석이다. 비와 바람이 거센 산악 환경에서는 든든한 피난처였기에, 혹시 모를 괌의 변화무쌍한 악천후에 대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산악 지형과 기후를 염두에 둔 견고한 구조가 오히려 괌 해안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바깥에는 밤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었지만, 쉘터 안으로는 바람이 충분히 통하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는 나를 보호해주었던 단단함이, 이날 밤만큼은 더위를 가두는 벽처럼 느껴졌다.
결국 쉘터를 빠져나와 바람이 잘 드는 절벽 위에 매트만 펼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악천후에 대비해 가져온 든든한 피난처를 곁에 두고, 정작 나는 지붕 하나 없는 바깥에서 밤을 보낸 셈이다.

곧이어 해가 수평선 위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의 일출 시각은 오전 6시 2분. 기온은 이미 27도였지만, 밤새 생각보다 습하지 않고 선선하게 느껴졌던 터라 숫자를 확인하고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체감온도는 순식간에 치솟았다. 밤새 남아 있던 선선함이 빠르게 걷히는 것이 느껴졌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장비를 정리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를 서두르며 라면으로 급하게 아침을 때웠다. 일출을 구경하는 사이 불어버린 면발은 이미 냄비 안에서 상당히 몸집을 키운 뒤였다.

막간을 이용해 괌 현지 하이커들의 하이킹 푸드를 공개한다.
Debbie는 여러 재료를 조합해 그때그때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준비한 것은 코코넛 가루와 바나나, 그릭 플레인 요거트를 바탕으로 건포도와 크랜베리, 각종 견과류를 섞은 보충식이었다. 여기에 사과를 조금 갈아 넣고 우유와 치아시드, 아마씨 가루, 시나몬, 100% 다크 코코아 가루, 오트밀 가루와 잘게 간 코코넛 과육까지 더했다.
보기에는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한 뭉치였지만, 제법 든든한 고단백 보충식이었다. 물론 나의 성격으로는 준비하기 어려운 정성 들인 음식으로 느껴졌다. 맛? 좋았다.

장비는 고싸머기어(Gossamer Gear)의 미니멀리스트19(Minimalist19)에 가볍게 꾸려왔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날 오전, 부니스톰퍼 하이킹에 참가했을 때 지급 받았던 무려 ‘메이드인코리아’ 빨간색 목장갑이다. 사족 보행이 필수불가결인 괌의 트레킹에서는 필수 장비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어제의 루트를 거꾸로 올라간다.

이틀간의 경험을 통해 현지 환경에 맞는 장비를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평소 아끼고 신뢰하는 장비라 해도, 대상지의 기후와 지형에 대한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분명한 한계와 불편함이 드러난다. 결국 좋은 장비란 익숙하거나 값비싼 장비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장비인지도 모른다. 그걸 아는 것이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는 길은 아나오 포인트의 윗부분을 반대 방향으로 통과하는 구간이었다. 높은 바위 절벽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아침 햇살이 조금 걷히자 바다는 전날보다 한층 더 짙고 선명한 푸른빛을 띠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때와 또 다른 것들이 보였다. 거대한 석회암 지대 곳곳에서는 바위 속에 박힌 조개 화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때 바다였던 시간이 그대로 굳어 남은 흔적처럼 보였다.

돌아가는 길에는 발을 지치게 만들었던 거친 석회암 지대를 조금 비껴갈 수 있는 우회 구간을 택했다. 완전히 편한 길은 아니었지만, 날카로운 돌기 위를 계속 밟아야 했던 올 때의 길보다는 한결 수월했다.

다시 지고숲으로 들어섰다. 어제는 내려왔던 길이지만, 돌아가는 오늘은 같은 길을 거꾸로 올라야 했다. 1박 2일 동안 준비한 식수도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남은 거리와 빠르게 오르는 기온을 가늠하며, 한 모금씩 아껴 마시는 등 식수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내가 준비해 온 4리터에 최 대장이 건네준 2리터를 더해 총 6리터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것으로도 1박 2일을 버티기에는 아슬아슬했다. 물을 구할 곳이 없는 이 길에서는 배낭의 무게보다 충분한 식수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행히 핑거솝을 다시 만났다. 식수가 거의 바닥난 상황이어서인지, 과즙을 가득 머금은 열매가 유난히 반가웠다. 한국에서 하이킹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나만의 ‘킥 하이킹 푸드’는 새콤하고 수분 많은 열매류가 맞는 것 같다.

수선해서 다시 쓰기에는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진 나의 이에로. 짧은 이틀 동안 아나오의 석회암이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그렇게 상냥하지만은 않은 길을 거꾸로 되짚는 내내, 전날부터 이어진 기억들을 하나씩 톺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트레일헤드로 돌아왔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난 쉐인은 차가운 얼음물을 건네며 수고 많았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쉐인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제는 유난히 부족했던 ‘식수 이슈’로 이어졌다. 평소보다 왜 그렇게 물이 부족했는지를 두고 가벼운 토론이 한동안 계속됐다. 걸음은 이미 멈췄지만, 이 대화마저 하이킹의 연장처럼 느껴져 좋았다.
아나오 클리프에서의 1박 2일은 괌의 길이 가진 거친 매력과 현실적인 제약을 함께 보여주었다. 트레일의 거리는 길지 않지만 괌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고, 인적마저 드물어 현지인과의 동행 없이 접근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숲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짙어지는 야생의 분위기는 충분히 경험해볼 만하다. 특히 카르스트 사면을 완전히 내려선 뒤 만나는 거대한 밀림, 거기서 아나오 포인트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은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풍경을 보여주었고, 포인트 끝자락의 동굴에서 바라보는 태평양과 밤하늘은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을 남겼다. 괌에서의 1박2일 하이킹과 야영.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트레일 자체는 매우 독특하고 흥미롭지만, 접근성과 보급의 편의성, 숙박 및 주변 상업시설과의 연계가 부족해 실제로 이 길을 즐기기 위한 난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방문한다면 반드시 이 지역의 경험이 충분한 현지인이나 전문 가이드와 동행하기를 권한다. 특히 트레일 중간에는 식수를 보급할 곳이 전혀 없으므로, 예상보다 넉넉한 양의 물을 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괌의 트레일의 특성은 이어지는 최승환 대장과의 인터뷰에서 조금 더 확인 할 수 있다. 좋은 여행이었다.
Adios, Guåhan. Esta ki umali’e’ ta’lo. (잘 있어요, 괌. 다시 만날 때까지.)

부니스톰퍼스를 만나러 아산(Asan)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기사님은 괌에 ‘산에 미친 사람’이 한 명 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필이면 바로 그날 오후에 만나기로 한 최승환 대장님이었습니다. 괌트레킹클럽에는 어떤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대장님은 어떤 계기로 괌의 산과 트레일을 걷기 시작하셨나요?
최승환 대장
저는 1993년도에 아버지를 따라 괌에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저의 첫 취미는 등산이었습니다. 그것도 자연과 함께하는 ‘혼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괌에 이민을 오게 되었을 때는 살짝 슬펐습니다.
하지만 괌에도 많은 등산 코스가 있다는 것을 『Best Tracks on Guam』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혼자서 틈틈이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10월 28일, 괌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괌트레킹클럽 괌한인산악회’를 창단했습니다.
그 후 매주 토요일 오전 8시에 모여 괌의 산, 바다, 동굴, 계곡, 폭포, 절벽 등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걸으면서 아쉽거나 앞으로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도 궁금합니다.
최승환 대장
괌 트레킹의 단점은 대부분의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괌 트레킹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나갈 수 없는 곳, 곶자왈처럼 한번 빠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점이 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길들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현재는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최승환 대장
람람산의 경우 매년 성금요일이면 십자가를 메고 수천 명이 올라가는 차모로인들의 성지입니다. 그래서 천주교 단체에서 시기에 맞춰 풀을 깎는 등의 정비를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곳은 대부분 별도의 정비를 하지 않습니다.

대장님에게 아나오 포인트는 어떤 곳인가요? 또 이런 장소를 걷고 머무르는 백패킹이 괌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승환 대장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쿤룬산맥 서쪽 끝자락, 외부와 단절된 ‘샹그릴라’라는 히말라야의 유토피아가 등장합니다.
현재 ‘샹그릴라’라는 말은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천국 혹은 낙원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나오 포인트 끝자락에는 그 샹그릴라가 존재합니다.
누군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 달라고 질문한다면 괌트레킹클럽 최대장은 과감히 이곳, 샹그릴라를 적극 추천합니다. 새들만 아는 이 땅의 천국. 새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덧 샹그릴라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괌에서 백패킹은 노지 캠핑을 의미합니다. 사방이 바다이고 산인 괌은 캠핑 인프라가 전혀 없는 불모지인 동시에, 백패커라면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하지 않는 곳에서의 백패킹’을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최승환 대장
9년째 이어오고 있는 괌트레킹클럽 괌한인산악회 활동과 더불어, 2025년 5월 14일부터는 초보자를 위한 ‘괌슬로우워킹 괌둘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하는 괌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걸을 수 있는 괌만의 매력적인 길을 새롭게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Slow Walking Trails’를 개발한 지도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난 1년간 걸어온 괌둘레길을 되돌아보다가 제주올레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괌둘레길의 아름다움이 그 어떤 곳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코스들을 서로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괌둘레길을 1년 동안 걸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대략적인 거리와 주요 지역, 꼭 지나갔으면 하는 장소 등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승환 대장
처음에는 제주올레처럼 괌의 길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북쪽에는 공군기지가 있고 남쪽에는 해군기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민간인이 갈 수 없는 곳들이 있고, 많은 사유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올레처럼 437km를 이어 제주를 한 바퀴 도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마다 나 있는 뒷동산과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연결된 코스라기보다 여러 지역의 코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또 실제로 루트를 조사하고 길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최승환 대장
옛스페인 바다둘레길의 경우 탈라이팍 돌다리에서 셀라만 스페인 다리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유적지이자 길입니다.
과거에는 남과 북을 연결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또 스페인 사람들이 괌에 오기 전부터 그 길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그 길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 길을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태풍으로 인해 수많은 나무가 쓰러지고 뒤엉키면서 기존의 길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곳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괌의 길이 그런 장거리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승환 대장
앞으로는 괌에 흩어져 있는 인프라와 자원을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특히 남부 지역의 숙박시설을 개선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저렴한 숙소와 식당·마켓 등 하이커가 머물며 필요한 물품을 보급할 수 있는 상권을 연계해야 합니다. 누구나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접근로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공조와 함께 관광청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 길이 완성되어 누군가 배낭을 메고 며칠 동안 괌을 걸어서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대장님은 그 길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기를 바라시나요?
최승환 대장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올레를 걸으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셨습니다.
괌둘레길을 걷는 분들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행복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괌은 수십 년간 그대로야.”
“괌은 발전이 없어.”
하지만 저는 그것이 진정한 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괌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 |
양광조
|
![]() |
최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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