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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이 야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비를 배낭에 짊어지고 도보로 여행을 하는 것이라면 바이크패킹(Bikepacking)은 말그대로 자전거에 장비를 싣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드자전거인지 산악자전거(MTB)인지, 또는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그래블바이크인지, 자전거의 범주나 짐을 꾸리는 방식, 코스 등에 따라서 다양한 바이크패킹 스타일이 있을텐데요, 우리는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보다는 MTB 자전거로 트레일 위주의 바이크패킹을 해보기로 하고 각자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지난 여름에 제주도로 바이크패킹을 다녀왔었는데 이제 곧 겨울이라 더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내년을 기약해야 하나- 하던 차에 다들 일정이 맞아 조금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지 중에 오지인 경상북도 울진 쪽으로요. 이대로 가을을 보내기는 다들 아쉬웠나 봅니다.

 

 

준비

울트라라이트 하이킹을 즐기는 하이커가 바이크패킹에 입문하기 좋은 점은 그 동안 사용하던 야영 장비들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죠. 자전거와 짐을 어떻게 싣을지만 고민하면 되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강을 따라서 잘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위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짐은 자전거에 랙(짐받이)을 설치해서 패니어에 싣는 것이 보통이었는데요, MTB의 경우는 뒷 쪽에 리어랙을 설치해서 패니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앞 쪽에는 구조적으로 패니어를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은 싯포스트와 핸들바에 랙을 설치 하지 않고도 자전거에 바로 설치할 수 있는 가방이 국내에도 보급이 되고 있습니다. 

 

 

@kangsai_의 바이크패킹 세팅

  • Bike - Trek Rosecoe 8 2020 
  • Seat post - Topeak Backloader 15L
  • Handle bar - Topeak Frontloader 8L
  • Top tube - Topeak Toploader 0.7L
  • Forks - Topeak Versa cage *2 with TOYL Container stuff bag 

 

MTB의 서스펜션 포크(샥)에 랙을 설치하는 건 어렵지만 Topeak의 Versa mount를 설치하면 파우치나 물통 등을 거치할 수 있으므로 총 수납 용량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Packing Tips

싯포스트백이나 핸들바백은 물건을 넣고 빼기가 패니어에 비해서 불편합니다. 자주 꺼낼 필요가 없는 것들, 예컨데 텐트, 에어매트, 침낭 같은 것들은 싯포스트백이나 핸들바백에 패킹을 하고 자주 꺼내 써야하는 것들은 프레임백이나 탑튜브백을 활용하면 편리합니다. 가급적이면 배낭은 안쓰는 편이 쾌적할테지만 적은 용량의 배낭에 자주 사용하는 자잘한 것들을 보관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이번에 고싸머기어의 미니멀리스트를 사용했는데요, 무게만 크게 늘지 않도록 신경쓴다면 배낭을 메는 것이 운행에 많이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Gossamer Gear Minimalist

 


Ultimate Direction FKT Vest @habitmind

 

Cayl Soyo 20L

 

코스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울진 종합운동장

 

계획했던 코스는 대략 이랬습니다. 첫날 울진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해 봉평해수욕장을 지나서부터는 임도로 진행하여 비포장 트레일을 달리고 해가 떨어질 때 쯤 되면 석포에 조금 미치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고 적당한 곳이 나오면 야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둘째날 일찍 출발하면 점심시간 전에 석포역 쪽을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밥은 근처 식당에서 먹기로 했었죠. 석포에서 분천역을 지나 여유롭게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둘째 날은 통고산 자연휴양림에서 캠핑을 하기로 하고 미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마지막 날 통고산에서 울진종합운동장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 코스였습니다. 

 

결론은 전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떠나기 전에 우리가 조사했던 것과 다르게 산불방지기간이 운영되고 있기도 했고, 계획했던 코스 중에는 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있어서 미리 허가받은 경우가 아니면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보호구역을 우회하는 길을 찾아야만 했죠.

 

 

끌바는 필수

이번 코스에서는 해발 900m 이상의 고도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지겨운 업힐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총 누적고도는 2,000m가 넘었어요. 도저히 페달을 굴릴 수 없는 정도의 경사가 자주 나타났고, 짐 때문에 자전거가 무거워진 상태여서 업힐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트레일에서는 로드와 다르게 살짝만 경사가 져도 훨씬 힘이 들었습니다. 초반에는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데 까지 페달을 굴렸는데 나중에 갈수록 눈 앞에 경사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내려서 끌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선희(@kangsai_)는 첫날 허벅지에 계속 쥐가 나서 고생했다.

 

초반에 조금 힘들지만 숨이 트이고 나면 생각보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가는건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심한 오르막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끌고 가는 것이 속도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적당히 타다가 내려서 끌고가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습니다. 오르막을 그냥 걸었다면 힘들었을텐데 자전거에 몸을 의지해서 걸으면 오히려 편했어요. 계속되는 오르막은 지겹긴 해도 다같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GoLite Shangri La 5 를 쉘터로 사용

 

깊은 골짜기 속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합니다. 첫째 날 생각보다 야영을 할 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아 헤드랜턴을 쓰고 숲이 우거진 임도를 한참을 더 달려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야 널찍한 곳을 찾아 하루 묵어갑니다. 짐을 줄이려고 쉘터는 넷이서 고라이트 샹그릴라 5를 하나만 사용했는데 4명이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기엔 딱 알맞은 크기의 공간이었습니다. 첫 날 저녁식사는 화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핫앤쿡 발열도시락' 을 준비해갔습니다. 다들 발열도시락 조리법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조금 헤맸습니다. 발열체 때문에 부피가 좀 크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점이 아쉬웠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고 든든했어요.

 

 

여행의 묘미 

첫째 날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진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둘째 날은 새벽 일찍 동이 트기도 전에 출발 했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아직 껌껌한 임도에서 자전거를 끌고 한참동안 오르막을 올라가는게 정말 힘들었어요. 최근에 정비를 한 듯한 길을 따라서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어느 갈림길에서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진행했는데 길을 잘못들고 말았어요. 산허리를 따라서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길을 잘못 들어선 줄도 모르고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에 길이 끊겨 있는걸 확인한 뒤에야 잘못 들어온 걸 알게 되었죠. 멘붕이었습니다. 잘못된 길에서 시간을 한참 허비한 게 허무하긴 했지만 신나게 내리막을 달리며 갈림길로 돌아갔습니다. 몇 시간 올라온 것 같은데 내려가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시간관계 상 분천역으로 가는 것도 포기해야 했고, 결국 바로 통고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것으로 루트를 다시 짜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날 점심은 원래 석포역 쪽의 식당에서 사먹으려고 했던 터라, 식량을 첫 날 저녁 먹을 것과 행동식만 준비해 왔기 때문에 식량도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맘때 쯤 부터 다들 굶주림과 극심한 엉덩이 통증에 지쳐갔습니다. 길바닥에서 비상용으로 남겨놓은 소시지와 커피를 끓여 마시는 것으로 대충 점심을 떼웠습니다. 아무일 없이 계획대로 되는 건 좀 재미없지 않나요? 좀 고생스럽긴 해도 이런게 기억에 오래남는 법이죠.

 

 

버려진 길들

이번 코스는 포장이 되어있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닦여있는 임도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자전거를 들쳐 메고 올라가야하는 험난한 코스는 거의 없었지만 가끔 오지 느낌의 장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길이 계속된다면 엄청 피곤하겠지만 모처럼 이런 길을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쓰러진 나무를 넘고 뒤엉킨 수풀을 헤치면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 통과합니다. 

 

지독했던 올해 장마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이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급 물살에 움푹 패여 버려진 길을 지나갔습니다. 이 길은 꽤나 길게 이어졌는데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 때는 차가 왕래했었던 황량한 도로를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걸어서 지났습니다. 왠지 우리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군요. 오후의 해가 꽤 따가워서 잠깐 이 길에 걸터 앉아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좀 남긴 했지만..

 

 

통고산

우여곡절 끝에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일정에서는 베러위켄드의 김효정(@kimchilli_)이 우리의 트레일엔젤1)이 되어 휴양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박3일밖에 안되는 일정이지만 마음만큼은 먼 거리를 여행해 온 장거리 하이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1) 트레일엔젤 : 장거리 트레일에서 하이커를 위해 음식을 놓아두는 등의 도움을 주는 사람을 칭한다.

 

휴양림 개수대 앞에 주차된 자전거들

 

저녁식사 메뉴는 부대찌개와 삼겹살이었는데요, 부대찌개 국물이 그대로 흡수되서 훈훈하게 몸 속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특히 김칠리님이 사온 귤이 정말 달고 시원하니 맛있었어요. 당이 떨어졌는지 그 자리에서 10개 넘개 까먹었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구박을 좀 듣긴 했지만 인생 귤맛이었어요. 배부르게 저녁을 먹은데다가 따뜻한 텐트 안에 있으니 금새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이것으로 모든 일정이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꽤 많은 거리를 더 가야합니다.


3일차 통고산자연휴양림의 아침

 

마지막 여정은 통고산에서 금강송면 방향으로 내려가서 광천을 따라 울진종합운동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휴양림에서 해발 900미터 쯤 되는 통고산 중턱까지 임도를 따라 끌바를 하면서 올라갔습니다. 통고산을 오르면 그 이후로는 약 15 km 정도의 내리막이 계속됩니다. 시속 60km/h에 육박하는 짜릿한 구간으로 이번 전체 일정 중에서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베이스캠프로 하는 MTB 코스를 짜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면이 고르지 못한 내리막을 빠르게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다 보니 아무래도 찍은 사진이 없네요. 이번에 우리가 진행한 루트 중에는 그럭저럭 잘 닦인 임도도 있었지만 상당한 구간이 흙길이나 자갈길이 아닌 돌로 이루어진 임도 비중이 높았습니다. 제 자전거를 제외하고 2.6~2.8인치 폭의 넓은 타이어였는데, 폭이 넓을수록 험로 주파에 유리했고 내리막에서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샥이 달린 MTB가 충격을 효과적으로 상쇄시키기 때문에 이런 길을 즐기기에는 더 알맞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마치며

여름에는 물을 많이 챙겨야하고, 겨울에는 부피가 큰 동계 야영장비를 패킹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10월말 정도면 여러모로 바이크패킹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가 다녀갔던 11월 중순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단풍이 꽤 남아있어서 낙동정맥트레일의 가을을 즐기기엔 충분했습니다. 계획대로 코스가 진행되지 않아서 기대했던 석포역~분천역 구간을 가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낙동정맥트레일 바이크패킹을 고려한다면, 이맘때쯤 산불방지기간과, 산림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구간이 있으므로 면밀한 사전 조사를 하여 코스를 짜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서 위치확인이 잘 안되는 곳이 많더라구요. (그나마 SKT가 잘 터지더군요) 

 

해외 사이트를 통해서 이런저런 바이크패킹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하긴 하지만, 넓은 평지와 구릉 지형이 많은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의 경우는 트레일 위주의 중-장거리 바이크 패킹을 즐길 만한 코스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잘 개발된 트레킹 코스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의 트레킹 코스와 도로를 잘 믹스하여 구성한다면 국내에서도 꽤 멋진 바이크패킹 코스를 발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Author

이동현
  • Editor
  • Filmer

Character

강선희
  • Chief editor
이재훈
  • Editor
양광조
  • Editor
김효정
  • Editor
Photo reedong, kangsai

'Bikepacking' 시리즈 보기

  • 1. 봉화에서 울진으로 2박 3일 바이크패킹
  • 2. 울진으로 떠난 2박 3일 바이크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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